크리슈나무르티.

왜 마음은 항상 쾌락을 요구하는가?

별관신사 2015. 7. 27. 19:34

왜 마음은 항상 쾌락을 요구하는가? 왜 우리는 쾌락의 저류로서 일을 고상하게
하거나 천하게 하는가? 왜 우리는 쾌락의 가는 끈에 매달려 희생하거나 괴로워하는가?
쾌락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그건 존재 속에 자리 잡는가? 당신들중에 스스로 이 문제들을

묻고 끝까지 대답을 찾아 보려고 한 사람이 있는가? 쾌락은 네 가지 단계를 통해서 존재
속에 들어오게 된다-즉 지각, 감각, 접촉, 욕망이 그것이다. 예컨대 나는 이쁜 자동차를 본다.
그러자 그것을 보는 것으로부터 나는 어떤 감각, 어떤 반응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또

그것을 만지거나 만진다고 상상하며, 그리하여 그것을 갖고 싶고 그걸 타고 뻐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또 나는 예쁜 구름, 하늘 높이 맑게 솟은 산, 봄에 방금 눈튼 잎, 아름다움과
웅장한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깊은 계곡, 장엄한 황혼, 혹은 아름다운 얼굴-총명하고 생기

있으며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는, 그래서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얼굴을 본다. 나는 강렬한
기쁨을 가지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내가 그것들을 바라볼 때 거기에 관찰자는 없고
오직 사랑과도 같은 순수한 아름다움만이 있다. 잠간 동안 나는 모든 문제, 불안, 불평을

잊고-거기엔 오직 그 놀라운 것만이 있다. 나는 기쁨으로서 그걸 볼 수 있고 다음 순간
그것을 잊으며, 아니면 마음이 찾아 들어서 문제가 시작된다-내 마음은 그것이 본 것에 대해
거듭 생각하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왔던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자꾸 보아야겠다고 혼자

생각한다. 생각은 비교하고 판단하기 시작하며 <내일 그걸 다시 가져야겠다>고 말한다. 잠간
동안 기쁨을 주었던 체험의 연속은 생각에 의해 계속된다.
그것은 성욕이나 혹은 다른 어떤 형태의 욕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반응하는 것은 완전히

정상적이다. 당신이 내몸에 핀을 꽂으면 나는 대응할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마비된다. 그러나 생각은 또 스며들고 그 즐거움을 되씹어보며 그걸 쾌락으로 만든다. 생각은
그 체험을 되풀이하고자 하며, 그래서 되풀이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건 기계적이 된다. 그것에

관해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은 쾌락을 부축인다. 그러므로 생각은 욕망을 통해서 쾌락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며, 따라서 어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은 생각에 의해 뒤틀린다.
생각은 그것을 기억으로 만들며, 그것을 되풀이 생각하므로 해서 또 기억은 키워진다.

물론 기억은 어떤 수준의 자리를 갖고 있다. 나날의 삶에서 우리는 그것 없이는 제구실을
다할 수 없다. 그것 자신의 자리에서는 그것이 유효함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거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가 있다.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은 마음은 참 자유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