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같은 네너지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동하는 방향이 틀릴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과 싸움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사랑할 줄도 모른다. 그에게는 아마도 우리와 다른
차원의 사랑이 가능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미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부처에게는 사랑이 있다. 그러나 부처의 사랑은 그 차원이
다르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자비라고 부른다. 그것을 절대로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대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미움 분노 폭력등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너지는 언제 어디서 든지 순식간에
변형될 수도 있다. 같은 에너지가 분노가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번에는 그 에너지가 그대의 내부로 이돌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무슨일을 하려는 충동이 일어날 때 정지하라.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억제가 아니다. 그대는 어떤것도 억제하지 않았다. 단지
어너지와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각도에서 에너지의 변화를
간파했을 뿐이다. 그리고 에너지가 어떻게 내면으로 들어가는 지를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충동은 진정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않다면 진정한 변형은 일어나지 않는다.
탄트라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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