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에 성적 만족에 위안거리에 종교적 믿음에 만족하고 있다.
그런 것들에 만족하면서 삶의 보다 깊은 감응과 보다 폭넓은 중요성을
전부 버린다. 심지여 종교 지도자들 까지도 삶에 대한 감응에는
인색해 지고 말았다. 결국 문제는 동물을 죽이는게 아니라 인간을 죽이는
것이며 그게 더 중요하다. 동물들을 이용하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삼갈 수도 있고 그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동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착취와 살상에 관한 전체적인 문제이다.
전시의 대량살상 문제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착취하는 방식 다른 사람들
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그들을 깔보고 함부로 대하는 태도 말이다.
아마 그대는 이런 일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바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차라리 신이나 환생에 대해 토론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즉각적인 행동이나 책임이 요구되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크리슈나무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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