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들 속의 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 <당신은
변하지 않았어, 왜 안 변하지?>라고 말하는 건 폭력의 한 형태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당신을 어떤 것으로 믿는 건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당신의 삶이지 나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사는 방식은 당신의 일이다. 내가 묻고 있는 건 어느 사회에서든 심리적으로
살고 있는 한 인간이 그의 마음 속으로부터 폭력을 말끔히 몰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게 만일 가능하다면, 바로 그 과정이 이 세계에 어떤 다른 삶의 방식을 낳을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폭력을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두 개의 끔찍한 전쟁은 인간들
사이에 더욱 더 장벽을 세우도록 가르쳤을 따름이다-즉 당신과 나 사이에 말이다. 그러나
폭력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일이든 분석을 통해서-우리 자신에 의해서든 한 전문가에 의해서든-성취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약간 변경할 수 있을는지 모르고,
좀더 조용히 살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전적 지각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분석하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건 무얼 뜻하느냐 하면 분석과정에서 내
마음이 비상하게 예리해진다는 것을 뜻하며, 그리고 전적인 지각을 가져오는 것은 그 예리함,
주의력, 진지함이라는 성질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한눈에 보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이 눈의
명징성은 사람이 미세한 부분들을 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며, 그런 뒤에 도약한다.
우리중의 누구는, 스스로 폭력을 없애기 위해, 비폭력이라고 불리우는 하나의 개념, 하나의
관념(이상)을 사용했으며, 또 우리는 폭력에 반대되는 관념 즉 비폭력이라는 관념을
가짐으로써, 사실적인 것, 실재하는 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관념(이상)들을 가져왔고, 모든 신성한 책들은
관념(이상)들로 가득차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폭력적이다-그렇다면 왜 폭력
자체를 다루지 않으며 그 말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하는가?
만일 당신이 실재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당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힘을
다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주의력과 에너지는 당신이 어떤 허구적, 관념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때 흐트러진다. 그렇다면 당신은 관념적인 것을 완전히 인멸할 수 있는가?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사랑인지 알아내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갖고 정말 진지한 사람은 도대체 아무
개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오직 있는 것 what is 속에서 살 따름이다.
당신의 분노라는 사실을 조사하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려서는 안되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의 반대를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그것(분노)을 비난하게 되며, 그리하여
당신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당신이 누구를 싫어한다거나 증오한다고 말할 때,
비록 그 말이 아주 심한 소리로 들릴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사실일 것이다. 당신이 그걸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 속으로 완전히 들어간다면 그건 끝나지만, 그러나 당신이 <증오하지
말아야 해. 내 가슴 속에 사랑을 지니고 있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이중의 기준을 가진
위선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순간 속에 완전히 산다는 것은 아무 비난이나 합리화
없이, 있는 것 속에, 실재하는 것 속에 산다는 것이다-그러면 당신은 그걸(분노) 완전히
이해하는 나머지 그걸 끝낼 수 있다. 당신이 명징하게 볼 때 문제는 풀린다.
그러나 당신은 폭력의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있는가-즉 당신 바깥뿐만 아니라 당신 안의
폭력의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있는가-다시 말해서 그걸 제거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일 없이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단지 말로만 찬성하거나 반대할
일이 아니라 아주 깊은 명상이 요구된다.
당신은 지금까지 일련의 진술을 읽어왔지만, 그러나 당신은 그걸 정말 이해했는가? 당신의
제약된 마음, 생활 방식,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전구조는 당신이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며
그것으로부터 즉각적으로 해방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은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거야.
나는 폭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볼거야. 나는 자유로와지려고
해볼거야>라고 말한다. <해볼거야>라는 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우려할 만한 진술중의
하나이다. 해본다는 건 없으며,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없다. 하거나 안하거나 둘중의 하나다.
집이 불타고 있는데 당신은 뜸을 들이고 있다. 전세계와 당신 자신 속의 폭력 때문에 집이
불타고 있는데 당신은 이렇게 말했다.
<어디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이데올로기가 저 불을 끄는데 가장 좋을까?> 집이 불타고
있을 때, 당신은 물을 나르는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에 관해 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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