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속에서는 상대방은 중요하며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너이다.
상대방은 스스로 하나의 궁극이다.
그대는 그를 개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어떻게 그대가 사람을 개조시킬 수 있을까
이 얼마나 큰 어리석음인가?
사람은 사물이 아니다. 사람은 너무나 크고
광활한 것이어서 어떤 이론도 그보다
중요할 수가 없다.
성경도 사람보다 중여하지 않으며 바가바드
기타도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삶의 영광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대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개조
시킬 수는 없다. 그대가 개조하려 한다면
그대는 곧 조작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때 사람은 수단이 되고 그대는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는 그대의 나가 상대방인
너에게 말할 때 너를 사랑하고 있을 때
그 뒤엔 어떤 이념도 숨겨져 있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상대방은 단지 사랑 받으며
그가 기독교인이든 힌두교인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곧 우정의 의미이다
친구들은 삶을 논할 수 있다.
거기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말했다.
더불어 살면서도 그것을 모를 수 있을까
더불어 일하면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수
있을까 존재하는 것을 망각하고 공간을
세상을 끝없이 날아다닐 수도 있을까
그는 하나의 이론은 제기하고 있지 않다.
그는 단순히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기억하라. 그대는 두가지 방법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때때로 그대는 단지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그때 그대의 질문은 진실하지 않다.
그것은 거짓이다. 답은 거기에 있다.
질문은 단지 속임수이고 수사일 뿐이다.
그것은 진실하지 않으며 뿌리가 없다.
그대 속에 대답이 있지 않을 때 질문은
근거있는 것이 된다. 그대가 질문을 할 때
그러나 그대가 대답으로 부터 질문을 끌어
낸 것이 아닐 때 단순히 그것을 바라볼
때에 질문을 그대를 비어있게 하고
열리게 하고 초대하고 묻게 한 채
그대는 남겨두고 떠난다.
오쇼의 장자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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