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마음의 상태이다-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 의식, 모든 걸 회의하고
질문하는 자유이며 따라서 아주 강렬하게 집중적이고 능동적이고 활기에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종류의 의존, 예속, 순응 및 수락을 내던진다. 그런 자유는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환경과 그것(문화) 자체의 경향에 그토록 의존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 마음이
그런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즉 완전히 고독하고 아무리 리더쉽도 전통도 권위도 없는 그런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이 고독은 어떤 자극이나 지식에도 의존하지 않고 어떤 체험이나 결정의 결과도 아닌
마음의 내적 상태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결코 내적으로 고독하지 않다. 스스로 격리, 절연하는
고립 isolation과 고독aloneness, solitude은 서로 다르다. 우리는 고립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안다-아픔을 당하지 않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기 둘레에 벽을 쌓고, 또 다른 형태의
괴로움인 이탈을 도모하며, 이데올로기의 허황한 상아탑 속에 사는 것 등이 그것이다. 고독은
이것과 아주 다른 어떤 것이다.
당신은 기억으로 가득차고, 제약 투성이이며, 어제의 투덜거림으로 꽉차 있기 때문에 결코
고독하지 않다-당신의 마음은 그것이 축적해온 쓰레기를 깨끗이 비우지 않은 것이다.
고독하려면 당신은 과거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이 고독할 때, 즉 어떤 가족에도
속해 있지 않고 어떤 나라에도 문화에도, 특별한 대륙에도 속해 있지 않고 완전히 고독할 때,
국외자가 된 느낌이 있게 된다. 이렇게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천진하며, 이 천진성이 마음을
슬픔으로부터 해방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말을 짊어지고 살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불행의 기억들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고독한 것이며, 그리고 고독한 마음은
순진할 뿐만 아니라 젊으며-나이나 시간에 있어서 젊은 게 아니라 어떤 나이에서든 젊고
천진하다-또 그런 마음만이 진실한 것을 알며 말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안다.
이러한 고독 속에서 당신은, 당신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나 이러저러했던 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아무 떨림 없이, 아무 그릇된 겸손, 공포, 합리화나 비난 없이 당신 자신을 볼 수 있는지
보라-오직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과 더불어 살라. 어떤 것과 친근하게 같이 살 때에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에 익숙해지는 순간-그 익숙해지는 것이
당신 자신의 불안이든 선망이든 아니면 그 어떤 것이든지간에-당신은 더 이상 그것과 더불어
살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강가에서 산다면 며칠이 지난 뒤 당신은 그 물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며, 또 만일 당신이 방안에 그림을 하나 걸어 놓고 매일 본다면 몇주일 뒤 당신은 그걸
잃어버린다. 그것은 산이나 계곡이나 나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당신의 가족이나
남편이나 아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질투, 선망, 불안 같은 것과 더불어 살 때
당신은 그것에 익숙해져서는 안되며, 그것을 수락해서는 안된다. 당신은 새로 심은 나무를
햇빛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하듯 그걸 보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은 그걸 비난하거나
변명하지 말고 그걸 보살펴야 한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걸 사랑하기 시작한다-당신이 그걸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질투하고 불안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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