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장난이 심한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면, 벌을 주어야 하나요, 아니면 사랑을 통해서 가르쳐야

별관신사 2014. 5. 15. 02:31

장난이 심한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면, 벌을 주어야 하나요, 아니면 사랑을 통해서 가르쳐야
하나요?


크리슈나무르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나름대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한 번 느껴
보세요. 장난이 심한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면 벌을 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을 통해서
가르쳐야 할까요? 벌을 주어서 버릇을 고친다는 것은 일종의 강제입니다. 이걸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법률에 의한 강제, 혹은 공포 분위기를 통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수가
있는 걸까요?

사랑을 통해서도 장난이 심한 아이의 버릇을 고칠 수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이럴 때의
'사랑'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이에 대한 사랑이 곧 아이에 대한 이해를 뜻한다면 -
단순히 버릇이 고쳐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난이 심한 까닭을 이해한다는 뜻이라면 - 이해

자체로 아이는 장난을 삼가게 될 것입니다. 가령 내가 아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더 이상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한다면, 아이의 버릇을 고치고 싶다는 내 욕망 자체가 하나의 강제 수단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아이가 왜 장난을 치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고, 아이가 그렇게 되는 원인

- 나쁜 음식, 수면 부족, 애정 결핍 혹은 다른 아이들로부터 받는 조롱 - 을 제거해 줄 수
있다면 아이는 더 이상 짓궂은 장난을 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아이를 달라지게
하려고만 한다면, 다시 말해서 아이를 어떤 틀에 맞추려고만 한다면 결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달라지게 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기울여서
아이가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는다면 이것은 영향력을 행사한 셈입니다. 이걸 진정한
의미에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지요? 말이 사랑이지 실은 어떻게 하라, 어떤 사람이 되라는

압력을 넣은 것에 다름아닙니다. 가령 여러분이 아이에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면,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어떤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 달라져야 한다는 뜻일까요? 현재의 상태에서
'마땅히 그래야 하는' 상태로 달라져야 한다는 뜻일까요? 만일에 마땅히 그래야 하는 상태로

달라진다면 이것은 과거의 모습을 조금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따라서 전혀 달라진 것이 아니지않을까요?
다른 말로 해 봅시다. 나는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사회와 성전은 내가

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탐욕을 부리지 않게 됩니다. 이 경우 나는 달라진
것일까요, 아니면 탐욕이라는 걸 다른 뜻으로 부르고 있는데 지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달라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탐욕의 문제를 조사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이 탐욕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탐욕을 버렸다는 말과는
전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