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덕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정신의 덕은 도덕적인 덕과 지적인 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도덕적인 덕은 선택에 관계된 성품의 상태이고, 선택이란 숙고한 욕구이므로 좋은 선택을 하려면 이치도 옳아야 하지만 욕구도 바른 것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지능과 진리는 실천적인 성질의
것이다. 실천적이거나 제작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관조적인 성질의 지능에서는 좋은 상태는 진리이고, 나쁜 상태는 거짓이다(이것이 결국 모든 사유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므로). 한편, 실천적이고 사유적인 부분에서, 좋은 상태란 올바른 욕구와 일치하는 진리이다. 행위의 단초는 선택
이고, 선택의 단초는 욕구와 목적적 이치이다. 그러므로 이성과 사유가 없거나, 또는 윤리적인 성품이 없다면 선택은 있을 수 없다. 한편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기지만, 지적인 덕은 대체로 교육에 의하여 발생도 하고 성장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지적인 덕에는 기술, 학적 인식, 실천지, 지혜, 이성이 있다.
지적인 덕의 의미 :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지적인 덕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지적인 덕은 꾸준한 가르침과 성찰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지식 같은 것이다. 지적인 덕은 성찰의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집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에 대비하고 배려하는 ‘사려’일 수도 있고,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경륜’(포부를 가지고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자연과 우주의 근본 원리를 ‘사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찰의 대상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따른 지적인 덕의 정도도 더욱 크고 훌륭해진다. 만일 누군가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면, 그 사람은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곧 사려나 경륜 같은 실천
적 지식은 어떤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지식으로, 유용성으로서의 지식, 기술로서의 지식에 불과하다. 여기에 비해 자연이나 우주의 근본 원리를 연구하는 것 같은 순수한 사색으로서의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일 뿐, 그밖에 어떤 다른 목적도 지니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우주
의 신비를 벗기기 위해 애쓰는 천문학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천문학 지식을 통해 무언가 다른 목적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앎 그 자체를 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천문학자는 순수한 사색적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탁월한 지적인 덕을 갖춘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적 지식을 낮춰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실천적인 지식 없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즉 그는 실천적인 지식은 순수한 사색적 지식에는 못 미치지만,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지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적인 덕을 논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에 또는 도덕적인 규범에 대해서만 논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조건, 더 나아가 인간이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논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