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미지 크리슈나무르티, 우리는 서로 가까이 앉아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고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현인과 진리탐구자들도 그러했으며, 그들은 우파니샤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우파니샤드에는 세 가지의 야스라고 불리우는 위대한
격언이 있습니다 그 격언은 지금 당신이 나에게 미치는 것만큼이나 당시의
진리탐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격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들은 이제는 공허한 옛이야기입니까 아니면 다시금 새롭게 되살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우파니샤드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식은 무한하고 절대적이며 최고의 진리이다
--내가 바로 그 무한이다 혹은 나라는 것은 곧 무한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나란 자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는 무한하다 혹은 개인은 무한하다
고대의 현인들은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세 개의 격언을
이용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네, 그렇다면 질문이 무엇입니까?
스와미지:그 격언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들은 이제는 공허한 것입니까?
그것들을 새로이 되살릴 필요가 없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내가 곧 그것이다'라는 격언 말입니까?
스와미지:네, 즉 의식은 곧 브라만이다
크리슈나무르티:거기에는 뜻을 잘 모르면서 무엇인가를 반복하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습니까? '나는 곧 그것이다' 이 말은 정말로 무슨 뜻입니까?
스와미지:당신이 곧 그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당신이 곧 그것이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 사람이든 '나는
강물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물은 무한한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계속 솟아오르고 수많은 나라를 거쳐 흘러내려 갑니다 나는 '내가 곧
강물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곧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공허한 것입니다
스와미지:그렇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우리는 왜 나는 저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나는 강물이다 혹은 나는
빈자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빈자는 능력도 지세도 없고 우둔합니다 그
우둔함은 유전 때문에 가난 때문에 타락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나는 또한
그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왜 우리는 항상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에만 우리 자신을 결부시키는 것입니까?
스와미지:'그것'이란 아마도 조건지위지지 않은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조건지워지지 않았다 맞습니다
스와미지:우리에게는 모든 조건을 부숴버리고 싶은 갈망이 있기 때문에 비 조건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조건지워진 사람, 협소하고 조그맣고 좁고 피상적인 즐거움에 사는
그런 사람이 조건지워지지 않은 상태를 알거나 깨닫거나 이해하거나 느끼거나 관찰할
수 있습니까?
스와미지: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신을 조건지우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게 할 수 있는 전부이지요
스와미지:그렇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조건지워지지 않은 상태가 존재한다 나는 그런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내 말은, 왜 우리는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에만 우리 자신을 연관시키려 하는 것인가, 왜 최저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스와미지:아마 브라만에는 최고와 최저의 구별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조건지워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이 '나는 그것이다' 혹은 '당신은
그것이다'라고 말할 때는 이미 어떠한 사실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스와미지:그렇지요
크리슈나무르티: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스와미지:우파니샤드의 격언에 대해 우리는 현인들이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말을 여기 다시 덧붙여야겠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만일 그들이 직접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요?
스와미지:글쎄요
크리슈나무르티:이런 의문이 떠오르는군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경험이란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합니다 깨닫다, 경험하다, 얻다,
자각하다 등등 사람이 실제로 극치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스와미지:무한을 말하는 것입니까?
크리슈나무르티:사람이 무한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정말로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여기서만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은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당신을
만나고 이것은 경험입니다 다음번에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되면 나는 당신을
알아보겠지요 '아, 난 그를 만난 적이 있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 속에는
인식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와미지:네 그것은 객관적인 경험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만일 내가 전에 당신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당신을 그냥
지나쳐 갈 것입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경험에는 인식이라는 요소가 있지
않습니까?
스와미지:가능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건 경험이 될 수 있겠지요 나는 당신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간의 첫 만남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스와미지:어떤 인상이겠죠
크리슈나무르티: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인상이겠지요 예컨대 '그는 아주
현명한 사람이야' 혹은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군' 혹은 '그는 이런 사람 아니면 저런
사람임에 틀림없어' 그것은 모두 내 스스로의 판단, 가치관, 편견, 조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한 배경이 당신을 만나고 당신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판단 평가
이것들이 곧 우리가 말하는 경험입니다
스와미지: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 경험에는 다른 것들도 ...
크리슈나무르티:잠깐만 내 말을 끝맺게 해 주십시오 경험이란 어떤 도전에 대한
응전이 아닙니까? 도전에 대한 반응 말입니다 난 당신을 만나고 반응을 보입니다
만일 내가 좋아한다거나 미워한다거나 편견을 갖는다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와미지:...
크리슈나무르티:한 사람이 전혀 편견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관계에서는
어떤 일이 생겨날까요? 당신이 전혀 다른 상태에 살고 있다가 나를 만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스와미지:비평이지요
크리슈나무르티:나는 당신에게서 틀림없이 그 비평의 인상을 인식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을 지나쳐 버리겠지요 우리가 최고의 것을 경험하라고 말한다면,
그 조건지위지고 편견에 빠져 있고 겁먹은 마음이 최고의 것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스와미지:그렇지는 않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최선의 것을 경험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의 실체야말로 바로 공포 편견 흥분 우둔입니다 그 우둔 공포 걱정의 조건이
그친다면 최고의 것을 경험하는 게 가능합니까?
스와미지:'그것'을 경험할 수 있겠지요
크리슈나무르티:아니, 말을 명확히 하지요 그 실체--공포 걱정 죄책감
그리고 그 모든 것--가 스스로 분해되어 버린다면 경험할 대상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스와미지:그 아름다운 질문 속에는 아주 많은 말들이 담겨 있습니다 현자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곧 아는 주체이다 어떻게 그 주체를 알 수 있겠는가?' '당신이 곧
경험이다'
내가 K, Y를 만난다는 것 말고 '나는 존재한다'라는 경험을 할 수는 없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경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스와미지:말한 그대로입니다 공포를, 모든 번잡을, 모든 조건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조건지워지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나는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아닙니다 내 말의 뜻은 '나는 우둔하다'는 것입니다
스와미지:나는 우둔합니까?
크리슈나무르티:나는 우둔합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이나 K, Y를 만나고 그들이
매우 현명하고 영리하기 때문입니까?
스와미지:그것은 비교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비교? 비교를 통해서 나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나는 어리석다 무엇을 해야 하지?' 그리고는 계속
우둔함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인생은 계속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나를 흔들어 깨웁니다 난 잠시 깨어나서 투쟁을 합니다 어리석게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더 현명해지기 위한 투쟁입니다 따라서 경험은 일반적으로 당신을 깨우고
당신이 반응을 해야만 할 도전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은 적절하게 혹은
부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반응이 부적절하다면 그것은 고통과 갈등과 투쟁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적절히 반응한다면 당신이 곧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도전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당신이 모든 대상에 대해
항상 적절히 반응한다면 더 이상 도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와미지:멋있군요
크리슈나무르티:네 나는 주관적 혹은 객관적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대체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까? 경험도 도전에 대한 응전이란 말을 했습니다 난
당신에게 '왜?'라고 물음으로써 도전을 합니다 당신은 '네 전적으로 옳습니다 난
당신과 동감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거기에 응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 주저를 느끼는 순간 당신은 이미 부적절한 반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이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 여기에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신, 지고의 것, 최선의 것, 최고의 행복, 극치의 황홀, 축복,
평화감, 사람은 이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스와미지:아닙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렇다면 무엇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나 혹은 당신은 왜
경험이 필요합니까? 어째서 행복과 황홀과 평화를 약속하는 최고의 것을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까?
스와미지:우리가 현재의 상태에서 부적절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바로 그겁니다 평화롭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하고 영원하고 궁극적인 평화의 상태를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스와미지:나는 불안하고 저기에 평화의 상태가 있습니다 '나는 불안하다'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불안한 것입니까, 우둔한 것입니까? 아니면
우둔함이란 내가 떨쳐버릴 수 있는 상태입니까?
크리슈나무르티:그렇다면 떨쳐버리는 실체는 누구입니까?
스와미지:내가 깨어나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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