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이야기.

토르, 여장을 하고 거인국으로 가다

별관신사 2015. 10. 19. 03:18

아스가르드에서 내로라 하는 미용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우 어려운
일에 매달려 있었지만 무엇이 즐거운지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일이
란 토르를 아름다운 신부로 꾸미는 일이었다.

전쟁의 신들인 아스가르드 신족 중에서도 토르는 가장 우락부락한 사나이였다. 구런 그가
지금 뾰루퉁한 모습으로 앉아서 머리를 볶고 얼굴에다 분을 처바르고 있다. 아스가르드 경
비대장 헤임달은 옆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미용사들에게 이것저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토르를 아름다운 신부로 꾸며야 해. 허리춤에 열쇠다발도 채워주고 아스가
르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혀. 치마는 길수록 좋아. 목에는 프레야의 목걸이를 걸어줘.
가슴은 더 불룩하게...그렇지! 거기다 브로치를 좀 달아줘.

남자 신들이 가끔씩 다가와서 토르를 보며 놀려댔다. 그럴 때마다 토르는 도끼눈을 하고
헤임들을 노려보았지만 헤임달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좋았어. 그리고 모자는 이걸 씌워. 어이! 면사포 가져와.

토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헤임달이 달려들어 그의 두 볼을 쥐고 흔들었다.
가만히 좀 있어요! 화장한 거 다 지워지지않소.
토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무어라고 중얼거리자 이번엔 로키가 다가와서 윽박질렀다.

이봐, 토르! 이게 어디 자존심 내세울 일이야? 신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 아닌가? 제발
국 참고 신부처럼 조신하게 있으라고.
토르가 신부화장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신들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

리인가? 제발 꾹 참고 신부처럼 조신하게 있으라고.
토르가 신부화장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신들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
리인가? 사태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어느날 토르가 잠에서 깨어보니 그의 도끼 묠니르가 보이지 않아다. 그의 머리카락이 쭈
뼛 일어섰다. 아사 신족 가운데 그의 도끼를 훔쳐갈 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틀림없이 도둑맞은 거야. 신들에게 해를 입히려는 자들의 소행이라고.

아스가르드에는 비상이 걸렸다. 신들을 지켜주는 도끼가 없어진 사실이 알려지면 머잖아
거인족이 쳐들어와 아스가르드를 박살낼 것이다.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로키는 프레야에게
갓 다시 한번 그녀의 매가죽을 빌려 입었다. 그리고 훨훨 날아서 거인들의 나라 요툰헤임으

로 갔다. 신과 거인 양쪽 모두와 통하는 로키로서는 토르의 도끼를 훔쳐갈 만한 자가 누구
라는 것쯤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는 거인 트림에게 바로 날아갔다.
어이, 로키! 오랜만일세. 그래, 시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뭐 좋은 소식이라도 가져왔나?

능청을 떠는 트림에게 로키는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이봐,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도끼를 훔쳤어? 설마 토르가 어떤 자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
지? 경치기 전에 어서 돌려줘.

틀은 로키의 어깨를 두드리며 낄낄거렸다.
자네 넘겨짚는 솜씨는 여전하구만그래. 하지만 토르가 제아무리 사납다고 해도 먼저 도
끼를 찾아야 날 어떻게 하지 않겠나? 가서 전하게. 도끼를 찾고 싶거든 프레야를 내 신부로

달라고. 로키는 우거지상이 되어 아스가르드로 돌아갔다. 그는 먼저 프레야의 집으로 달려갔다.
오 아름다운 미녀여, 면사포를 쓰세요.
로키는 매가죽을 돌려주며 다짜고짜 이렇게 다그쳤다.

어서 신부 차리을 하고 나랑 같이 요툰헤임으로 가시다. 글쎄, 트리이란 친구가 당시을
좋아하게 된 모양이오.
프레야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녀가 어찌나 화가 났는지 집이 다 덜덜 떨

리고 아름다운 브릿ㅇ 목고리의 고리가 끊어져 구슬들이 바닥에 굴러 떨어질 정도였다. 로
키는 그녀가 바로 그 목걸이 때문에 난쟁이한테 몸을 주던 일을 떠올리며 능긂ㅈ게 웃었다.
프레야는 로키의 생각을 읽었는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면서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내 방에서 나가요!
오딘은 신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도끼가 거인족의 수중에 있으니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묘안이 없어서 모두들 끙끙 앓고 있을 때 경비대장 헤임달이 나서서 말했다.

토르에게 면사포를 입힙히다.
신들 사이에는 잠시 어리둥절한 침묵이 흐른 뒤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토르의 얼굴은 붉
으락푸르락했다. 그러나 헤임달은 굽히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오. 결자해지. 토르가 프레야로 분장하여 놈에게 접근하도록 합시다.
신들은 만장일치로 헤임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토르는 거구의 미녀로 탈바꿈한 것이다.
로키가 단장을 마친 토르를 황홀한 눈매로 훑어보면서 말했다.

야, 이거 대단한 미인일세그려. 그럼 내가 자네 시녀가 돼서 동행하겠네.
일찍이 그리스 영웅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에 가지 않으려고 여장을 한 채 숨어 있었다
고 한다. 그러나 아스가르드의 영웅 토르는 거인과의 전쟁을 위하여 여장을 한 채 적지로

달려가는 것이다.
신부와 시녀가 트림의 집에 도착한 것은 이른 저녁이었다. 성대한 환영식이 벌어졌고 하
인들은 맛난 음식을 내왔다. 트림은 면사포를 쓴 토르를 상석으로 안내했다. 바로 옆에는 로
키가 앉았다.

토르는 긴 여행길에 몹시 시장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고운 자태이 여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듯 앉은 자리에서 황소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잇따라 연어 여덟 마리까지 해치웠다.
여인들을 위해 마련된 음식들은 순식간에 토르의 뱃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뿔잔에 담긴 술을 석 잔이나 연거푸 들이켰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트림은 로키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우리 거인국에서도 저렇게 먹얻는 여자는 본 일이 없어.

로키는 간드러진 여인네의 목소리를 흉내내 재치있게 대답했다.
아이,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우리 아가씨가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으면 그러시겠어
요. 저분은 말예요, 꼬박 여덟밤을 한끼도 안 먹고 굶었거든요. 오늘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그러니까 말이죠, 첫날밤에 대한 기대도 남다르시답니다. 오늘밤에 힘 좀 쓰셔야겠어요. 호
호...
로키는 트림에게 추파까지 던졌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트림은 더욱 안달이 났다. 그는 덥

석 신부의 머리를 잡고 면사포를 젖히려 했다. 이제나저제나 신부에게 입을 맞추려고 벼르
고 있었는데 로키의 말을 듣고 보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으악, 저 여자 눈 좀 봐! 프레야는 눈이 원래 저렇게 무섭게 생겼나? 꼭 불타는 것 같아
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로키가 흐느적거리며 트림에게 다가가 겨드랑이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 일으켰다. 그리고

귀엣말로 소곤거렸다.
생각해 보셔요. 아가씨는 오늘을 기다리느라 드시지만 못한 게 아니라 주무시지도 못했
다고요. 그러니 눈에 핏발이 서는 건 당연하죠. 오늘밤에 잘 어루만져 주세요.

그 말을 듣는 트림의 목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는 벌떡 일어나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뭣들하느냐? 어서 도끼 묠니르를 가져와라. 우리의 바르 신에게 신성한 결혼 서약을 하
려면 망치가 있어야지.

마침내 도끼가 나타났다. 난쟁이 에이트리 형제가 신들을 위해 만들어준 선물 가운데 가
장 귀한 보물인 도끼 묠니르가 돌아온 것이다. 토르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붉
은 턱수염만큼이나 붉었다.

거인 트림이 내미는 도끼를 손에 쥐자마자 아름다운 신부는 광포한 천둥신으로 돌아갔다.
그는 거추장스러운 면사포와 긴 치마를 북 찢어버리고 닥치는 대로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
다. 트림은 머리끝부터 발끝가지 곧게 두쪽이 났다. 그리고 축하연 자리에 있던 모든 거인이

똑같은 운명을 당했다. 그가 얼마나 광분하여 날뛰었는지 하마터면 로키마저 저세상의 객이
될 뻔했다. 잃어버린 도끼 묠니르는 그렇게 토르의 손으로 돌아와 제몫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