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스러운 일이다. 웬 일인지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유난히 자기 국토의 모습을 강렬하게
의식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토끼처럼 생겼다는 한반도의 그 지형은 신문 제호의
디자인에서 부터 심지어는 고무신의 표에 이르기
까지 아무데나 사용되고 있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안방 담벼락에도 우리는
무궁화의 꽃과 잎으로 수놓아진 한반도의 모습을
때때로 발견하게 된다.
비록 그 수는 서투르고 파리똥이 묻은 수틀은 초라
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어쩐지 거기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민족의 소원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물론 프랑스인들도 센강을 사랑했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은 그들의 라인강을 신화화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국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체의 모습을 하나의
문장처럼 새겨 왔거나 혹은 그것을 금수강산
삼천리 식으로 찬양하는 경우는 결코 흔지 않은
일이다. 국수주의에 광분했던 지난날의 일본만
해도 후지산 꼭대기다 사꾸라를 게다짝에 까지
내세우면서도 국토의 형상은 별로 강조하려고
들지 않았다. 우리에겐 실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지형이 아름답고 기묘한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라지려는 국토에
대한 불안감이 늘 우리의 마음속에서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한국의 50배나 되는 중국의 광활한 대지
또 거센 유목민들이 주름잡은 북 아시아의 넓은 벌판
거기에 한구석 흔적처럼 늘어 붙어있는 작은 반도의
주민들이 어찌 제 땅덩어리의 운명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었던가?
외세 침락에의 강박관념은 이 나라의 역사가 시작
되면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계속되었다. 국토가
넓대서 천리도 아니며 좁대서 또한 삼천리도 아니다.
그것은 자랑도 한탄도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확인
하나의 다짐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에게
국토를 빼았겼을 때에도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진
토끼의 그 형상은 삼천리로 불린 흙덩어리의 이미지
만은 좀처럼 지워질 수가 없었던 것이였다.
반도 삼천리 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르는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꼭 전세계의 인간들에게
이 땅은 우리의 것이니 누구도 손대지 말아 달라고
애소하는 것 같다.
아시아 지도를 펴놓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왜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는지를 절감
하게 된다.그 지리적 위치는 숙명적인 것이였다.
일본의 어느 역사학자 까지도 한국의 불행한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논한 일이 있다.
아시아 지도를 펴놓고 태평양에 가까운 부분을
바라보면 어머니인 대륙의 가슴에 한반도가 마치
유방처럼 늘어붙어 있다. 그 유방에서 한방울 두방울의
젖이 흘러내린것이 하나는 대마도며 또 하나가 대기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 열도는 흡사 그 품에 안겨있는
갓난 아이와 같다. 대륙의 남북 양단에 다 같이
열려진 선만(鮮滿)지역은 북 아시아의 문화와
중국의 문화를 모두 장벽없이 흘러들어오게 하는
이점이 많았지만 한편 북아시아에 강대한 정치
세력이 일어나면 그 세력밑에 들어가야 하고
중국에 통일왕조가 출현하면 그에 복속해야 된다는
불가항력의 불행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 이후로 다시 한반도는 일본의 대륙진출에
있어 다리 역활을 하여 또 한번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을수가 없다.
이어령의 흙속에 저 바람속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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