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를 생각한다.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 여인을 쫓아 다니거나 돈을 버는 일
같이 번고로운 일에 사용하는 시간중십분의 일만이라도 영적인
수행에 사용한다면 몇년안에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세기가 바
뀌는 때에 히말라야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티베트의
한 스승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미팜이였다.그는 시계 대포
비행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성되자 말자 그것들이 좀
더 큰 번잡함의 원인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곧바로 파괴시
켜 버렸다. 티베트어로 몸은 <뤼 lu>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수화
물처럼 <사람이 떠난 뒤에 남는 것>을 의미한다. <뤼>라고 말
할때 마다 티베트인들은 인간은 이 삶과 육신에 잠깐 머무는 여
행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따라서 티베트인들은 외
적인 환경을 좀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시간을 소모하는 번거
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다.그들은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먹을것.
등을 덮을 정도의 의복 그리고 머리를 덮을 정도의 지붕만 갗춰
진다면 만족해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던대로 계속해서 외적
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애쓴다면 본래대로 종말을 맞게 되
고 끝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제정신이라면 어느 누가 호텔에
투숙할때 마다 호텔방을 괴팍스럽게 다시 장식하려 하겠는가?
나는 파툴 린포체의 이런 충고를 좋아한다.
늙은 암소를 기억하라
외양간에서 잠자는 것에 만족한다
당신도 먹고 자고 그리고 배설한다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 밖에 무슨 일이 있으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지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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