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 소질이나 삶의 목적의 관점에서,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라는
사고방식을 당신의 확신으로 굳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와 같은 현대적
견해에 대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서 저항하라. 그것이 어떤 것이건, 그런
사고방식은 기껏해야 과학적 가설에 불과하며, 더욱이 그 가설의 증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견해에 따르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 사라지고 만다.- 그 점에서는 이 가설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 그리고
양자를 구별짓는 다른 특징들은 이미 별다른 가치가 없는 것으로 된다.
이 암초에 부딪쳐 바야흐로 실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때로는 전국민의
행복마저 난파당하고 있다. 이 문제에 전연 언급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교회중심주의적인 신앙만으로는 그에 대항함에 있어 약간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윈의 진화론과 대결하려면 생활을 지배할 만큼의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만
한다.
현대의 인간이 단순한 철학적 사색에 의해서, 혹은 현대의 자연과학과 종교를
결부시키려는 시도에 의해서 확고한 신의 신앙에 도달한 예를 나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 신앙에의 도달은 오히려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냐하면 외적인 행복도 그렇지만, 특히 영속적인 내적 만족에 이르는
길은 그밖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음을 구하는 영혼에 있어서,
심원한 이상주의와도 온전히 일치하는 영적 존재에 대한 신앙과, 나아가서
인간 본능의 가장 열등한 본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고의 이념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에 대한 신앙이 가장 절박한 삶의 욕구이다. 이와 같은 신앙이
없이는 자기 존재를 이해할 수 없으며, 또 인간의 온갖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생존을 계속할 수가 없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영국의 어느
여류 시인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아니, 주저치 말라- 고상한 것을 구함은
분명한 선, 당신의 유일한 선이다.
당신은 이미 그걸 깨달았다. 저 숭고한 모습이
온갖 천한 선택을 영원히 거부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