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힐티)

11월 30일

별관신사 2014. 12. 22. 07:57

우리는 모두가 신의 존재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무신론자이다. 설사 아무리 교회에 열성일지라도 (이것은 반드시
무신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또 아무리 무신론이나 불가지론을

대단치 않게 여기고 있을지라도, 역시 우리는 무신론자일 것이다.
현대의 여러 민족들도 또한 이같은 신의 경험이 없다면 가속도적으로
완전한 무신앙으로, 그리고 진화론에서 말한 대로의 다만 고등동물로서의

생존을 향해 돌진해 갈 것이다.
그러나 신은 자기 존재를 크게 전체적으로 스스로 증명할 것이다. 즉
첫째로, 자연과학이 철학에 대하여 우위를 차지하고부터 불과 3,4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사람들의 심각한 불만이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
다음으로, 위의 결과로서 <유혹의 힘(살로니가 후서 2:11)>과 무서운 운명이
사람들을 엄습하고 있는 것으로도 그것은 분명할 것이다. 이 때문에 누구든지

사물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에 대해 반드시 눈이 뜨여서, 틀림없이
진화론이 말하는 것과 같은 세계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사실
그것은 수천 년(사람들은 물론 그런 학설조차 몰랐었다)이래 존재해 왔을

리도 없고, 다만 학문적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무릇 이상주의적 요구를 갖는 이상 신을 안 믿는 사람이라도 어떤 인간적
이상을 스스로 창조한다(이를테면 괴테처럼). 그리고 그 완전성의 척도를

축소시키고 싶지 않다면, 가공의 미점을 만들어서 그 이상상을 장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하기에는 너무도 영리하고 또 세 속의 경험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회의주의에 빠진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선을 의심하고
조소로써 그것을 경멸하려 든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생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는 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리고 인류에게 재차
참 이상을 부여해 주셨다.
다아윈의 후계자인 영국의 과학적 진화론의 주된 대표자가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인간을 통해서 작용하는 <섭리>라 도덕을 낳았다는 것은 아마도 적적한
말일 것이다. 그래서 생물계의 극히 작은 부분에 한하여 도덕적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주의 극히 미세한 조각에 불과한 이 좁은 구역
안에서만 정의로 향하는 한 줄기 냇물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에
의해서 적셔진 에덴동산의 아주 미약한 싹틈밖에는 어떤 <도덕적>의도도

찾아볼수 없다. 거기에서는 주로 <생존경쟁>에 의해 이루어지는 우주진행의
완성으로 향한 흐름밖에 찾아볼 수 없으며, 그리고 이 흐름은 다른 모든
메카니즘과 마찬가지로 옳은 것도 아니고 옳지 않은것도 아니다.>

<만일 섭리의 교리가 자연계의 가장 시시한 한쪽 구석에 있어서도 우연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또 이 교리가 우주 과정은 합리적인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뜻하여 오랜 시간의 연속 속에서 문란해짐이 없는

질서가 우주를 지배하여 왔다는 신념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승인할 뿐 아니라
모든 진리중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영원히 계속되는 진보를 지배하고 있는 조화적 질서- 우리와 무한 사이에

드리우는 저 베일(자연)을 한 올의 실도 끊지 않고 천천히 짜 나가는 물질과
힘의 씨줄과 날줄 - 우리만이 알 수 있는 이 우주 - 이것이 바로 과학이
세계에 대하여 그려 보이는 그림이다.>

<나는 사회에 있어서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설립된 교회를 상상할
수가 있다. 그 교회에서는 매주 예배가 올려지지만, 그것은 신학의 추상적
테마를 되풀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진실하고 올바르며

깨끗한 생활 이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또 그곳은 매일의 근심이라는
무거운 짐에 지친 사람들이 누구라도 들어갈 것을 허용하고 있는 (그러나
극소수인밖에 이르지 않았다.), 보다 높은 생활을 관조함으로써 한때의 안식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와같이 나는, 실무자이건 생활 투쟁속에 있는
사람이건, 그들이 쉴새없이 추구하는 성과라는 것이 평화와 사랑에 비하여
결국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를 깊이 반성할 시간과 기회를 가질만한 장소를

마음에 그릴 수가 있다. 만일 그런 교회가 성립된다면, 분명 아무도 그것을
무너뜨릴 생각 따위는 하지않을 것이다.>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이 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숙고해 보지

않으려는가.

1. 다만 좀더 확고하고 근본적으로 보다 철저하게 형성된 그러한 교회를
우리는 진정 바란다.

2. 이른바<조화있는 세계질서>는 처음 그것을 창조하고, 그리고 그것을
조화있게 지탱해 가려는 정신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 질서는
우연히, 그리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3. 이 질서를 부여하는 영이 이 세상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더욱이 극소
부분만 지배하고 그 밖의 대부분을 그 자체의 운명에 내맡긴다는 것도 역시
진리일 리가 없다. 얼핏 보기에 신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지 않은 듯 싶은

부분도 역시 조화없는 세계질서의 일부분이며,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뿐이다. 전능이 아닌 신이라거나, 온 세상을 창조만
해 놓고 통치하려 하지 않는 신이라거나, 그런신은 전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도 더 한층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마가복음 12:34)>라고. 게다가 당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가까울 정도다. 왜냐하면 당신의 싸움은
참으로 실재하는 신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멋대로 상상한 신의
환상에 대한 싸움이며,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싫어하는 인간적인 교회제도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래도 아직 당신안에 이런 견해에 거스르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애의 탈을 쓴, 약간 학문적인 거만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같은

거만으로부터는 결코 완전한 신념도, 충분한 만족도 얻어낼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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