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는 종교와 일치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이건 정당하게, 또 마음 편안히 소유하고자 한다면, 일단
그것을 버리고(적어도 마음속에서, 때로는 실제로도), 다시 한 번 신으로부터
돌려 받아야만 한다. 재산, 명예, 좋은 평판, 건강, 일하는 힘, 가정, 생활의
기쁨 등이 모두 그렇다. 아니, 목숨 그 자체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해 두지 않으면 이 모든 재보는 우리에게 있어서 파멸의 원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시련>의 의미이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것을 하는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하는 것이다. 창세기 22.
시련을 겪고 난 후에까지 이와 같은 단호한 선한 의지가 우러나지 않는다면,
시련의 임무가 완전히 수행되지 않은 것으로, 신이 결국 인간이 불평을 그치지
않는다고 해서 신이 시련을 일찌감치 중단하거나, 혹은 그 사람을 평안 속에
놓아두거나 하신다면, 그것은 대단히 나쁜 징조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신에게
버림받아. 확실히 파멸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왕왕 이 세상의 행복자라 생각되고, 때로는 자기 스스로
그렇게 자부하고 있는데, 잠이 깨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삼월에 내리는 눈
겨울은 갔는데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생명과 빛과 대기를
내 마음은 죽도록 갈망한다.
깊은 중압에 눌려
내 생각은 아직도 깔려 있고,
불안과 근심과
무거운 일의 멍에가 나를 괴롭힌다.
대지는 옛날처럼 비통한 절규로
나를 억누르고 있다.
환희의 봄노래가 들릴 때마다
또다시 새싹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주여, 당신의 은밀한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다시 한 번 내려가라 (요한계시록 3:1)
높은 산을 떠나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라.
너는 다시 한 번 하산을 결행해야만 한다.
편력을 위해 네 마음을 다시 연단하라.
아직 안식의 관을 쓰기엔 너무 이르다.
네 용기는 아직 모자라고, 지혜도 어둡다.
주님은 너의 수련을 멈추지 않으신다.
아직 행위로써 주어지지 않은 것을
신고하면서 기꺼이 포착코자 힘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