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행복이다. 어떤 것을 이윽고 손에 넣을 수가
있다는 충분한 확신은, 비유컨대 나무의 꽃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나중에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과일보다도 정말 인간의 마음의 이상적 요구에
합당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신앙의 행복은 미래에 있어서 생각할 수 있는 일체와 행복에
비교하더라도,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지상 생활의 꽃이다.
내세에서는 이러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후회의 탄식은 천국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그것을 뒷날에 하지 않기 위해서도, 언젠가는 이 행복을 맛보아
두어야 한다.
"그대가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쫓아낸 것은 결코 영원도 다시 돌려주지
못한다."
(쉴러의 시 "체념"중에서)
모든 행복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소유의 순간이 아니라, 그에 앞선
순간, 즉 바램의 실현이 가까워져서 이미 확실히 보이기 시작할 때이다. 이것을
가장 멋지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피게니에의 아름다운 독백이다. "가장 위대한
아버지(주신 제우스)의 가장 아름다운 딸 <성취>여, 이리하여 당신은 마침내
내게로 내려온다."
(괴테 "이피게니에"제 3막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