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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줄곳 나에게로 와서 이것을 묻는다 거기엔 아무런 목적도 없다. 거기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못적없음. 재미이다. 그대는 그것을 즐겨야 한다. 그대는 단지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뿐이다. 그대는 그것을 위해 다른 어떤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만일 어느 순간에 놓쳤다면 그대는 그 순간을 영원히 놓쳐버린 것이다. 그대는 되돌아 갈 수 없다. 종교는 하나의 상징이다. 누군가가 나에게로 와서 말했다. 인도에는 50만명의 산야신 구도자들이 있다. 이것은 매우 비경제적이다 이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힘입어 살고 있다. 그들이 존재하도록 계속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러시아에서는 단 한명의 산야신도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허..

장자(莊子) 2021.03.31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기억.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기억상실이 치유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자기자신에 집착하는 것이 모든 고통의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은 마침내 자아가 당신과 다른 사람에게 알마나 해를 끼쳐 왔는지 이해하게 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지혜로운 일이 바로 당신보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하는 것임을 알게된다. 이렇게 하므로써 당신의 가슴과 마음도 치유되고 당신의 영혼도 치유될 수 있다. 무아란 처음에 자아가 있었고 나중에 자아를 없앴음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무아라 함은 애초부더 자아가 존재한 적이 없음을 뜻한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무아이다. 티벳의 지혜 중.

관조.

어떠한 판단도 없이 순수 관조가가 되면 그대는 거울이 된다.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는 순수 거울이 된다. 거울은 못생긴 여자가 와도 판단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가 와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오지 않아도 거울은 그대로 순수하다. 사람을 비추던 비추지 않든 거울은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관조자가 되는것은 거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쇼의 위대한 만남 중.

붓다는 명상에 새로운 비전을 던져 주었다.

붓다 이전의 명상이란 하루에 한번이나 두번 정도 하는 것이였다. 이를 테면 아침에 한시간 저녁에 한시간 붓다는 완전히 명상을 새롭게 해석했다.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한시간 저녁에 한시간 하는 명상은 설사 하루에 네번을 다섯번을 한다해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달랑 한시간 만을 떼어서 이것이 명상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삶이 곧 명상이 되어야 한다, 순간순간의 숨이 되어야 한다. 누가 아침에 한시간을 내서 그 시간만 숨을 쉬는가? 그럴 수 없다. 명상은 숨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숨은 우리가 잠 잘 때에도 계속된다. 혼수상태가 되어도 계속된다. 붓다는 이렇게 명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붓다는 명상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오쇼의 위대한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