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으로 영만(盈滿)을 유지하려는 <어리석은>짓은 차라리 고만두어라.
쇠를 두들겨 끝을 예리하게 해도 길게 간직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황금이나 보옥을 집에 가득히 쌓아두어도 잘 지킬 수가 없다.
부귀를 누리고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될 것이다.
공을 세우면 몸을 빼는 것이 하늘의 도리니라!
이미 제 2 장에서 <만물이 자라도 자기의 소유로 삼지 않고,
만물을 생육화성하고도 자기의 자랑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공업을 성취하고도 높은 자리에 처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는 <공을 세우면 몸을 빼는 것이 하늘의 도리니라>라고
가르쳤다. 만물을 창조하고 운행하는 하늘은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
즉 <無爲而治>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오직 나를 위해 일하고
또 언제나 최고의 정점에 있기를 바라고 또 영원히 부귀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하늘의 도는 차면 지고 오르면 내리게 마련이다.
오히려 찬 상태는 차지 않은 상태보다 더 위태롭다. 가장 뾰족한 끝은 오직 문드러질
도리밖에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들도 정점에 올랐을 때,
영달하고 부귀를 누릴 때에 가장 조심해야 한다. 이때 자만하고 교만하면
나머지는 오직 멸망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정점이나
부귀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노자의 슬기다.
동시에 혹 정점에 올랐거든 스스로 몸을 물릴 줄 알아야 한다.
<공을 세우면 몸을 빼는 것이 하늘의 도리니라>이다.
이때의 천도는 자연의 도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스스로 이루어지고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도리?
의 뜻이다. 즉 노자가 말하는 ?공을 세우면 몸을 빼는 것?은 퇴영적인
은퇴사상이 아니다. 이것이 <천도>이기 때문에 지키라는 것이고,
그 천도는 바로 <무위자연의 도>, 즉 스스로 이루어지는 도이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노자는 패배주의자가 아니다.
천박한 인간적 농간을 부정하고 막대하고 영원한 자연의 도에
올라타기를 바라는 큰 도 (大道)의 주장이다.
그리스도교가 현세적 욕망이나 권세를 부정하고 신의 세계에서
영생을 찾는 것과 같이 노자는 <하늘의 도><무위자연>에서
영원하고 큰 것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