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十輻, 共一?, 當其無, 有車之用.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다같이 꽂혀 있으나,
바퀴통의 한복판 빈 곳에 바로 수레를 작용시키는 요인이 있다.
?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흙을 이겨서 기물을 만들지만, 기물의 텅 빈 곳에 바로
기물의 쓸모가 있다.
鑿戶?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문이나 창을 뚫어 방을 만들지만 방의 공간이 바로 쓰이는 곳이다.
故有之以利, 無之以爲用.
그런고로 유(有)의 물건이 이롭게 쓰여지는 까닭도 결국은
공허한 무(無)가 활용도기 때문이다.
하상공은 제 11 장을 <무용(無用)>이라 이름 붙였다. 즉
무의 효용이란 뜻이다.
유형의 모든 물건이 이용되지만 자세히 살피면 기물의 유형적인 부분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 부분 즉 공간이 활용되는 것이 적지 않다.
우선 차륜이 그렇다. 만약 바퀴통 한복판의 공간이 없어 차축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구른다는 핵심이 바로
곡(? : 바퀴통)의 무의 부분에 있다.
또 모든 그릇은 더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릇은 무언인가를 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공간이 바로
그릇의 생명이다. 또 방이나 집도 사람이 거처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러한 실례를 들어 유형적 유보다는 공허한 무의 효능이 크다는
것을 주장했다. 노자의 이런 주장은 특히 동양의 예술에서 높이는
경지다. 동양의 음악이나 그림은 이 무의 효능을 잘 살렸기 때문에
더욱 심오하고 유현하다.
한편 유는 현상세계이고 무는 정신세계이다.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서구적 사상은 현상세계에 대한 유형적 추구에만
골몰하고 있는 느낌이며 따라서 인류사회가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신세계의 무형적 효용에 각성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