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우를 상정해 보자. 신한국시대가 개막되고 팔팔한 새 장관이
들어서고 감사원의 눈초리가 매섭다. 일반 관공서 창가에 민원서류
들이 쌓인다. 모두가 부산스레 움직이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하나 되어 가는게 없다. 참다못해 한 민원인이 담당 직원
에게 항의를 했다. 담당자 왈 나무 바빠서 그만 깜빡 잊었습니다.
곧 처리하겠습니다. 그러기를 여러날이 지났는데도 서류는 돌지
않는다. 신임국장이 과장에게 왜 일을 능률적으로 처리하지 못하
느냐고 나무랐다. 과장은 국장이 딱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오던 방식대로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장이 계장에게 일을 시켰다. 계장 왈 그건 내 소관이 아닙니다.
계장이 직원에게 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느냐고 물었다. 직원 왈
언제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리셨습니까?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뭔가
불만을 털어 놓았다. 상급자 왈 그런 걸 왜 나에게 묻나 나는 여기서
그냥 하라는 일만 하면 돼 네게 무슨 결정권이 있다고 그러는가?
왜 일을 그렇게 처리하느냐고 누군가가 나무랐다. 담당자 왈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별 차이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민원서류를 챙기고
있는 과장을 보고 옆자리의 동료 왈 그런 구질구질한 일은 남을 시키면
되지않나 시간에 쫓긴 직원이 동료에게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동료 왈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는 줄 아나? 이런 공무원들에겐 공통된
게 있다. 그건 되도록 일을 벌이지 않고 되도록 책임지는 일을 벌이지
말자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다고 벌받지는 않는다.
이게 그들의 구시대에 터득한 살아남기 위한 처신술이다.
1993년 3월16일 조선일보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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