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완전히 다른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당신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아주 진지한 질문을 하고 있다. 도대체 뭔가 행해진게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가 우리에게 말해줄 것인가?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보다 잘 이해한 것으로 추측되는 소위 정신적 지도자들은
뒤틀어 보려고 하면서 우리에게 말했고, 새로운 주형속에 우리를 부어 넣었고, 그리고
우리를 별로 이끌어 가지 못했다. 즉 괴변에 능하고 유식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했고
그것은 우리를 멀리 이끌지 못했다. 우리는 모든 길이 진리로 이끈다는 말을 들어왔다-당신은
힌두교도로서의 길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기독교도로서의 길을, 또 다른 사람은
회교도로서의 길을 갖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같은 문 앞에서 만나는데-그것은, 보면
알다시피, 너무도 분명히 부조리한 문인 것이다. 진리는 길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리고
그것이 진리의 아름다움이며, 그것은 살아 있다. 죽은 것은 그것이 정적이기 때문에
길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진리란 살아 있고 움직이는 것이어서 쉴 데가 없고, 신전이
없고, 절이나 교회도 없고, 종교도 없고, 선생도 없고, 철학자도 없으며, 아무도 당신을
그리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때, 당신은 이 살아 있는 것이 다름 아니라 당신의
실상(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즉 당신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바 당신의 분노, 당신의 잔인성, 당신의 폭력, 당신의 절망, 그리고 고민과 슬픔이
그것이다. 당신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꿰뚫어 볼 수 없고, 어떤 말의 막을 꿰뚫어 볼 수
없으며, 희망과 공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당신은 당신이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음을 안다. 안내자는 없으며, 선생도
없고, 권위자도 없다. 오직 당신-당신의 다른 사람 및 세계와의 관계-뿐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당신이 깨달을 때, 그것은 커다란 절망을 가져 오거나-이 절망에서
냉소나 비꼼 같은 것이 나오거니와-또는 당신도 그 누구도 세계와 당신 자신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바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모든 자기연민은 사라진다. 우리는 보통 남을
비난함으로써 번성하는데, 이것은 자기연민의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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