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순수, 순결, 우애, 비폭력 같은 이상은 좇지 마세요. 아무 의미가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용기있는 사람이려고 '애쓰지' 마세요. 용기라는 것은 공포의 반응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통찰과, 공포 및 그 원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한 공포는 떠나지 않습니다. 안전한 결혼, 안전한 직업, 안전한 지위,
안전한 책임 범위, 안전한 이념, 안전한 신앙, 세상과의 안전한 관계, 신과의 안전한 관계
-이런 것을 추구하는 한. 마음이 어떤 형태로, 어떤 수준에서든 안전과 만족을 추구하면
여기에는 공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자각하고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순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깨어 있는 마음, 응시하는 마음, 공포에서
자유로와진 마음이 순수한 마음입니다. 궁극적인 존재, 진리, 혹은 신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은 이 순수한 마음뿐입니다.
불행히도, 다른 나라도 다 그렇듯이 이 나라에서는 이상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관으로
행사합니다.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이상, 폭력을 미워해야 한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이상이 행사합니다.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이상은 늘 멀리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상은 고질병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과
맞부딪칠 때 이상은 곧은 생각, 단순한 생각, 진실한 생각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있는' 그대로인 상태로부터의 도피수단입니다. '있는' 그대로인 상태를
여러분은 두려워합니다. 부모님이 뭐라고 말할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두려워하고, 질병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고, 이 '있는' 그대로인
상태가 여러분을 비참하게 만드는 한이 있어도 여기에 뛰어들어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아음이 놀라우리만큼 단순하고 맑아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밝은 상태 안에서는 공포가 더 이상 머물지 못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모두
이상이라는 철학적 허구 안에서 배워 왔습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인 상태와의 만남을
지연시킬 뿐입니다. 따라서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가령 여러분에게는 비폭력의 이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습니까? 왜 폭력과 맞서지 않습니까? 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습니까? 만일에
여러분이 자신의 탐욕, 야심, 쾌락과 오락을 직시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발전 수단으로서의 사간, 이상 구현 수단으로서의 시간이 끝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보세요. 마음이 어떤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시간을 발명해
냅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은 고요할 수 없습니다. 고요한 마음은 순수하고 싱싱합니다.
여기에 수천 년간의 경험이 흘러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실존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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