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의 名詩.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별관신사 2012. 11. 17. 09:57

풀푸레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 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개울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둥거리며 주춤걸음으로 걸어 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쨋던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있고
그 두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부드러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 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 소녀야 너는 뭘했지?
그렇군 너는 참 바느질을 했지...

하지만 당나귀는 다쳤단다
파리란 놈 한테 찔렸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 만큼
당나귀는 너무나 일을 많이한다

내 소녀야 너는 무얼 먹었지?
너는 앵두를 먹었지?

당나귀는 호밀조차 먹지 못했다
주인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고삐를 빨아 먹다가
그늘에 가 누워 잠이 들었다

네 마음의 고삐에는
그만한 보드라움이 없단다

그는 물푸레나무 울타리를 끼고 가는
아주 순한 당나귀란다

내 마음은 괴롭다
이런 말을 너는 좋아 할테지

그러니 말해 다오 사랑하는 소녀야
나는 울고 있는걸까 웃고 있는걸까?

가서 늙은 당나귀보고
이렇게 전해다오 나의 마음을

내 마음도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신작로를 걸어 간다고

당나귀한테 물어라 나의 소녀야
내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당나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귀는 어두운 그늘속을

착한 마음 한 아름 가득 안고서
꽃핀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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