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나와 함께 좀더 가주시기 바란다.

별관신사 2015. 10. 30. 01:23

나와 함께 좀더 가주시기 바란다. 문제가 한결 복잡하고 미묘할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을 계속 구명해 보도록 해보자.
내가 당신에 관한 또는 어떤 것에 관한 이미지를 만들 때, 나는 그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보는 자가 있게 된다. 예컨대 내가 붉은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는데,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내가 그것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좋아함과 좋아하지 않음은 나의 문화, 훈련, 연상, 취향, 선천적 및 후천적인 개성들의

결과이다. 그것은 내가 보고 판단하는 그 중심으로부터 생긴 것이고, 따라서 보는 사람은 그가
보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러나 관찰자는 하나 이상의 이미지를 알고 있다-즉 그는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관찰자는 그 이미지들과 다른가? 그 역시 또 하나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그는 항상 있는 그대로의 자기에 대해 보태거나 빼고 있다. 그는 바깥과 안으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항상 저울질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한정(가감)하고, 변경하는 생물이다-그는 그

자신의 지식, 영향 및 무수한 계산인 의식의 범위 안에서 살고 있다. 동시에 당신이
관찰자-당신 자신-를 바라볼 때, 당신은 그가 기억, 체험, 사건, 영향, 전통, 고통의 무수한
변주 등 과거의 것들로 만들어져 있음을 안다. 따라서 관찰자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그리고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건 역시 그의 일부이다. 그는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어 있으며 이
죽음과 삶을 가지고-죽은 잎과 산 잎을 가지고-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상태-그것은
시간의 범위 안에 있는데-속에서 당신(관찰자)은 공포, 질투, 전쟁, 가족(가족이라고 불리는 그

추하게 폐쇄된 실재)을 보며, 그리고 도전이며 새로운 것인 그 관찰된 것의 문제를 풀려고
한다. 당신은 항상 새로운 것을 낡은 말로 번역하려 하며 그래서 당신은 영원히 갈등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