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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낯설은 세상.

별관신사 2020. 7. 23. 15:01

너무도 낯설은 세상.

세상이 너무도 낯 설다.
열심히 살며 열심히 사랑하며
여기까지 왔건만 ...
지나 온 시간들이 이상해지리 만큼
지금의 세상은 너무도 낯설다
생전 처음으로 밟아 보는 타향에
온 것 처럼 말이다.
세상은 뒤집어졌다. 뒤집어 진 세상 !
그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은 심정이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그러나 지금의 세상에 그런 고리타분한 말을
믿는 사람은 없어졌다. 법위에 있는 것 들이 많다
정점에 정치권력이 있고 다음에 돈이 있고
우리가 배웠던 법의 그 절대적인 평등원칙은
사라지고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우리같은 어진 백성들은 억울한 일이 생기면그래도

그 억울함을 풀어주고 바로 세워 줄
법이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지팡이 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추상같던 법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 되었다.
왜? 권력을 동원하면 되고 돈을 동원하면 되고
현장을 들키지만 않으면 되고 증거만 없애면 된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낯설다
죄를 지어도 그 현장만 들키지 않으면 되고
권력이 있으면 되고 그것이 안되면 돈이 있으면 된다.
우리는 과실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메지 말라는
그 순수한 옛 어른들의 말씀들을 믿고 살아왔다.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우리의 지혜로웠던 어른들의 그 말은 이제 박물관으로
가야하는 말이 되었다.
그 말씀을 지금 이 말로 고쳐 써보자.
남의 과수나무의 과일도 들키지만 않으면
따먹어도 된다. 지금은 이말이 더 공감을 받는다.
지금의 세상은 그렇게 낯설다.
지혜의 서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사람의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이 하나 사라짐과 같다.
진정한 지혜 지식 앎은 체험에서만 나온다. 체험하지 않은
지식은 이론일 뿐이다. 수많은 삶의 시간을 지나며
얻은 그 노인의 모든것은 보석같다.
탈무드의 이런 지혜의 말에 그들의 번영의 기반을 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어떤 정치인은 말했다. 60세 이상된 노인은 투표도
하지말라.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실상을 잘 나타낸 말이다.
탈무드 문화권과 너무도 대비되는 말이고 실상이다.
그것도 동양의 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하기야 우리의 전통적인 예의와 윤리도덕은 이미 땅에
떨어져 버린지 오래다.
우리의 세대에서는 듣도 보지도 못했던 사건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절실히 느낀다.
예의와 윤리도덕을 있게하는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양심이다.
지금의 신인종들에겐 그 양심의 저장고인 양심보가
사라져 버린 변종들이 대부분이다.
양심보가 없어져 버린 돌연변이의 인간들이
대세를 이루는 우리의 신 사회. 거기에는 양심과 지혜가
있는 토종의 인간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척박하고 거칠은
비정한 땅이다.
어쩌면 지금 이런 말을 지껄이는 나 자신이 이상한
미개인 일른지 모른다.이 우리의 사회를 점령한 신인간들
에게는 나 자신이 구태의연하고 퇴보한 삶의 패배자라는
딱지가 알맞을 것인지도 모른다.
밀려드는 신인종들인 백인들에게 쫒겨 뒤를 돌아보며
조상의 삶의 터전을 내어 주었던 인디언들의 순박하고
소탈한 그들의 자연의 삶이 그리워지는 이 심정은 무얼까?
별이 내리는 밤이면 모깃불을 피운 마당에 앉아 덥수룩한
수염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별 이야기 달의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 토기 이야기가 한없이 그리운 이 심정은
쉬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그 낯설음에 적응하지 못한
삶의 패배자의 자기변명일까?
그래도 이 거칠은 삶의 현장에서 바둥거리며 참으며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은 억겁을 변함없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아직도 변함이 없이 인내하며 서 있는
저 자연의 모습이다. 자연은 말없이 내게 말한다
억겁의 푸르름 그 영원의 자태에 너의 희망의 깃발을
드높이 걸어보라고....

현담 최옥찬.

세상이 너무도 낯 설다.
열심히 살며 열심히 사랑하며
여기까지 왔건만 ...
지나 온 시간들이 이상해지리 만큼
지금의 세상은 너무도 낯설다
생전 처음으로 밟아 보는 타향에
온 것 처럼 말이다.
세상은 뒤집어졌다. 뒤집어 진 세상 !
그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은 심정이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그러나 지금의 세상에 그런 고리타분한 말을
믿는 사람은 없어졌다. 법위에 있는 것 들이 많다
정점에 정치권력이 있고 다음에 돈이 있고
우리가 배웠던 법의 그 절대적인 평등원칙은
사라지고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우리같은 어진 백성들은 억울한 일이 생기면그래도

그 억울함을 풀어주고 바로 세워 줄
법이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지팡이 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추상같던 법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 되었다.
왜? 권력을 동원하면 되고 돈을 동원하면 되고
현장을 들키지만 않으면 되고 증거만 없애면 된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낯설다
죄를 지어도 그 현장만 들키지 않으면 되고
권력이 있으면 되고 그것이 안되면 돈이 있으면 된다.
우리는 과실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메지 말라는
그 순수한 옛 어른들의 말씀들을 믿고 살아왔다.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우리의 지혜로웠던 어른들의 그 말은 이제 박물관으로
가야하는 말이 되었다.
그 말씀을 지금 이 말로 고쳐 써보자.
남의 과수나무의 과일도 들키지만 않으면
따먹어도 된다. 지금은 이말이 더 공감을 받는다.
지금의 세상은 그렇게 낯설다.
지혜의 서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사람의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이 하나 사라짐과 같다.
진정한 지혜 지식 앎은 체험에서만 나온다. 체험하지 않은
지식은 이론일 뿐이다. 수많은 삶의 시간을 지나며
얻은 그 노인의 모든것은 보석같다.
탈무드의 이런 지혜의 말에 그들의 번영의 기반을 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어떤 정치인은 말했다. 60세 이상된 노인은 투표도
하지말라.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실상을 잘 나타낸 말이다.
탈무드 문화권과 너무도 대비되는 말이고 실상이다.
그것도 동양의 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하기야 우리의 전통적인 예의와 윤리도덕은 이미 땅에
떨어져 버린지 오래다.
우리의 세대에서는 듣도 보지도 못했던 사건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절실히 느낀다.
예의와 윤리도덕을 있게하는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양심이다.
지금의 신인종들에겐 그 양심의 저장고인 양심보가
사라져 버린 변종들이 대부분이다.
양심보가 없어져 버린 돌연변이의 인간들이
대세를 이루는 우리의 신 사회. 거기에는 양심과 지혜가
있는 토종의 인간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척박하고 거칠은
비정한 땅이다.
어쩌면 지금 이런 말을 지껄이는 나 자신이 이상한
미개인 일른지 모른다.이 우리의 사회를 점령한 신인간들
에게는 나 자신이 구태의연하고 퇴보한 삶의 패배자라는
딱지가 알맞을 것인지도 모른다.
밀려드는 신인종들인 백인들에게 쫒겨 뒤를 돌아보며
조상의 삶의 터전을 내어 주었던 인디언들의 순박하고
소탈한 그들의 자연의 삶이 그리워지는 이 심정은 무얼까?
별이 내리는 밤이면 모깃불을 피운 마당에 앉아 덥수룩한
수염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별 이야기 달의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 토기 이야기가 한없이 그리운 이 심정은
쉬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그 낯설음에 적응하지 못한
삶의 패배자의 자기변명일까?
그래도 이 거칠은 삶의 현장에서 바둥거리며 참으며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은 억겁을 변함없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아직도 변함이 없이 인내하며 서 있는
저 자연의 모습이다. 자연은 말없이 내게 말한다
억겁의 푸르름 그 영원의 자태에 너의 희망의 깃발을
드높이 걸어보라고....

현담 최옥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