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신 속에서 이것을 관찰하자. 당신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당신
자신과 사회에 관한 이념적 개념을 갖고 있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려고 한다. 따라서
행동은 그 생각과의 일치, 그 생각에의 접근에 있어서의 그것이며, 그래서 거기엔 항상 갈등이
있다. 생각, 간격 및 행동이 있다. 그리고 그 간격 속에 시간의 전장이 있다. 그 간격은
본질적으로 생각이다. 당신이 장차 행복해질거라고 생각할 때, 당신은 시간 속에서 어떤
결과를 성취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갖는다. 생각은, 관찰을 통해서, 욕망을 통해서,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간 생각에 의해 유지된 그 욕망의 계속을 통해서 이렇게 말한다. <장차
나는 행복해질 거야. 장차 나는 성공할 거야. 장차 세계는 아름다운 곳이 될거야.> 그래서
생각은 시간인 그 간격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내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을 만큼 완전하게 살 수 있을까? 왜냐하면 시간은 슬픔이기 때문이다. 즉 어제
또는 수많은 어제로 되어 있는 지난 날, 당신은 사랑했고, 혹은 지금은 가버린 친구를
가졌었으며, 그리고 기억은 남아서 당신은 그 쾌락과 고통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당신은
돌이켜 보고, 원망하고, 희망하고, 후회하며, 그래서 생각은 그걸 되풀이하면서 우리가
슬픔이라고 부르는 것을 키우고 시간에 연속성을 준다.
생각에 의해 키워진 이 시간의 간격이 있는 한, 거기엔 슬픔이 있고, 공포의 연속이 있을
터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간격이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이다. 만일 당신이 <그게
과연 끝날까>하고 말한다면, 그건 이미 하나의 생각이고, 당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어떤
것이며, 따라서 당신은 간격을 갖는 것이요 그래서 당신은 다시 붙잡히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중대한 문제인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죽음을 알며, 그게
매일 당신 옆에서 걷고 있다는 걸 안다. 도대체 당신이 그것(죽음)을 문제 삼지 않을 만큼
완전하게 그것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을 그렇게 만나려면 그것에 관한 모든 신념, 모든 희망,
모든 공포가 끝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어떤 결론, 이미지, 미리 생각한 불안을
가지고 그 별난 것을 만나며, 그리하여 당신은 시간과 더불어 그것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 사이의 간격이다. 즉 관찰자-당신-는 죽음이라고 불리우는
그것을 만나기를 두려워 한다. 당신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즉 당신은 그것에 관한
모든 종류의 희망과 이론을 갖고 있다-당신은 재생이나 부활을 믿으며, 또는 무시간적이고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바 영혼, 아트만atman, 정신적 실체라고 말해지는 어떤 것을
믿는다. 그러면 당신은 영혼이 있는지의 여부를 스스로 알아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당신에게 물려진 생각인가? 생각을 넘어선 영속적이고 연속적인 어떤 것이 있는가? 만일
생각이 그것(죽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생각의 장 안에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영속적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생각의 장 안에는 영속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속적인 것은
없다는 발견은 엄청나게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래야만 마음은 자유로와지고, 당신은 볼 수
있으며, 그러면 거기엔 커다란 기쁨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없는 까닭은 당신이 그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죽음은 말이며, 공포를 낳는 것은 이 말이요,
이미지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이미지 없이 죽음을 볼 수 있는가? 생각이 솟아나는 원천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한, 생각은 언제나 공포를 낳아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공포를
합리화하고 그 불가피한 것에 대항하든가 아니면 당신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당신은 수많은 믿음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당신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시공의 틈 속에 공포, 불안, 자기연민인 갈등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죽음의 공포를
키우는 생각은 이렇게 말한다. <그걸 미루자, 그걸 피하자, 될 수 있는대로 그걸 생각하지
말자>-그러나 당신은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나는 그걸 생각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때,
당신은 이미 그걸 어떻게 피할까를 생각한 것이다.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한 까닭은 당신이
그걸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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