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갖고 있으며,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이 공포이다. 그 간격,
그 시간은 공포가 낳은 것이다. 삶은 황홀한 바다로 향한 창을 가끔 여는 나날의 괴로움,
나날의 모욕 그리고 슬픔과 혼란이다. 그것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죽음이란 그 비참(고통, 불행)을 끝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것에 부딪치는 것보다는 아는 것에 매달리는데-즉 우리의 집, 우리의 가구, 우리의 가족,
우리의 성격, 우리의 일, 우리의 지식, 우리의 명성, 우리의 외로움, 우리의 신들이 우리가 아는
것으로서, 그것들은 그것 자체의 쓰라린 실존의 틀에 갇혀서 그것 자체 속에서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우리는 삶은 항상 현재 속에 있고 죽음은 먼 시간 저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도대체 이 나날의 삶의 싸움이 삶인지 아닌지 물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재생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영혼의 살아남음에 대한 증거를 원하며,
천리안의 주장과 심령 연구의 결과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결코 묻지 않는다-즉 어떻게 매일 기쁨과 아름다움을 갖고 살 수 있는가는 묻지 않는다.
우리는 고통과 절망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수락했고 그것에 익숙해졌으며, 죽음은 조심스럽게
피해야 할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때, 죽음은
엄청나게 삶과 비슷하다. 당신은 죽음 없이 살 수 없다. 만일 당신이 매순간 심리적으로 죽지
않는다면 당신은 살 수 없다. 이것은 지적 역설이 아니다. 하루하루 마치 그것이 새로운
아름다움인 양 완전하게, 전적으로 살려면 어제의 모든 것에 대해서 죽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고, 그리고 기계적인 마음은 사랑이 무엇인지 또는 자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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