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의 가장 두드러진 툭징중 하나는 생각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추상적이고
암시적으로 접근해 나간다는 점이다.
한시(漢詩)의 매력은 사행시(四行詩)에 있는데 그 기본
성격은 말에는 끝이 있으나 뜻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언어와 소리와 색깔가지고는 도저히 실체에 못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양의 정신은 언어와 소리와 색깔을
넘어선 곳에서 그 고향을 찿는다. 동양의 정신은 단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만 소리를
사용하고 형태없는 무한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만
색깔을 사용한다. 즉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모든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다. 라이튼 스트래치(lytton
strachy) 는 자일즈(giles)가 번역한 한시를 읽고서
희랍예술이나나 희랍시와의 차이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희랍의 예술은 언어의 뜻을 전하는 면에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완성된 것이다. 희랍예술은 항상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으로 표현하려고 애를 쓴다. 따라서 가장
섬세하고 잘된 희랍시는 모두가 격언시 들이다....
이는 정말로 중국 서정시의 효과와 판이하게 다르다,
한시는 격언시와는 반대다. 한시는 어떤 인상을 심어
주려는데 목적이 있으며 그것마져도 최종적인 표현을
쓰는게 아니라 무궁무진한 상상과 감정의 겨우 한
끄트머리만을 내보일 뿐이다. 한시는 놀라움과 경이를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맨 마지막에 드러내는 자태는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고 지극히 미묘한 생각들로
메일에 가려져 있다. 이태백(李太白)의 오언절구(
五言絶句)를 읽어 본다.
어여쁜 여인 구슬발을 걷고 앉아
수심에 싸인 얼굴로 눈썹을 찡그리네
그져 눈물 방울만 보일 뿐
뉘를 원망하는지 그 마음 모를레라.
스트레치는 이 시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문득 구슬발이 걷히는 순간 한 광경이 우리를 상상의
바다로 신비의 항해를 떠나게 해 준다.
이런 류의 많은 시들은 피사체의 자연현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처럼 판에 박는게 아니라
직접 겪은 체험을 절묘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
이것은 동양의 시 미술 내지 생활예술에 있어서 기본
양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선의 양식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선은 동양정신의 전형적인 꽃이다.
선의 황금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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