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예수가 그대의 집앞에 와서 문을 두드린다면
그대는 그곳에 있어서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할 수
있는가? 그대는 어딘가 다른곳에 가 있을 것이다.
결코 집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집에 있지
않고 온 세상을 방황하며 떠돌아 다닌다. 그대의
집이란 어디인가? 다름 아닌 그대의 내부 의식의
중심이 자리잡고 있는 곳 그곳이 그대의 집이다.
그대는 결코 그곳에 있지 않다. 깊은 명상에 들어가
있을 때만 집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 있을 때만 예수를 알아
볼수 있다. 육체를 가지고 오는가 아니면 육체없이
영적으로 오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만일 집에 있다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집에 있지 않다면 그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예수가 아무리 문을 두르려도 그대는
집에 없다. 그것이 바로 취해있다는 말의 의미이다.
그대는 집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대는 자기 자신을
잊고 싶을 때마다 술이나 마약을 찿는다.
자신을 망각하고 싶어질 때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잊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의
모든 목적은 기억을 깨우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종교가 술을 마시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술을 마시는 그 자체가 잘못된것은 아니다.
그대가 추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것이 아니라면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러나 추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그것보다 더 나쁜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추구의 길은 자신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술은 망각속으로 몰고가기 때문이다.
왜 자기 자신을 잊으려고 하는가? 왜 자기 자신에 대해
그토록 싫증을 내고 있는가? 왜 자신과 더불어 살 수
없는가? 왜 자신과 더불어 살 수 없으며 편안하지 못한가?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깨어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면
공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느낀다. 내부에 무를 느끼고
그것으로 부터 달아나기 시작한다. 내면 깊은 곳에서
그대는 하나의 심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줄곳 달아나려
하고 있다. 붓다는 그것을 무아 아나타라고 불렀다.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 단지 내면의 하늘이 끝없는
심연이 끝도 없고 시작도 없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것을 들여다 보는 순간 그대는 현기증이 나고 어지
러워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달아난다.
그러나 어느곳으로 달아날 수 있을까?
어느곳으로 가나 그 비어있음의 세계는 그대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대의 도 그대의 본성이다.그것과 화해하지
않으면 않된다. 명상은 그 자신의 비어있음과 화해
하는 길이다.
오쇼의 도마복음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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