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라즈니쉬와 그의명상글.

모든 사물은 본래의 기원으로 돌아간다.

별관신사 2021. 1. 26. 05:23

또한 돌아 가야만 한다. 만약 당신이 삶을

이해하게 된다면 죽음 또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삶이란 본래의 근원으로 부터

 

멀어져 감이며 죽음은 집으로의 회귀이다

죽음은 추하지 않다. 죽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죽음은 오직 삶을 방해하지 않고

 

삶을 짖누르고 억압하지 않고 산 사람들

에게만 아름다운 것이다. 삶을 아름답게 산

사람들에게만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충분히 용감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만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하고 춤추고 축복하는 사람들에게만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의 삶이 축복

이였다면 죽음은 축복의 절정이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당신의 삶이 어떠했든 죽음은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당신의 인생이 고통스러웠다면

죽음은 고통을 드러낼 것이다.

 

죽음은 위대한 폭로자이다. 만약 당신의 삶이

행복스러웠다면 죽음은 행복을 드러낼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단지 육체의 안락과 쾌락의 삶을

 

살았다면 육체를 버려야 한다는 것 때문에

죽음은 당연히 몹시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

될 것이다. 육체는 일시적인 거처이며

 

밤에 들렀다가 낮에 떠나는 사원이다.

육체는 당신의 영원한 거처가 아니다.

그것은 안식처가 아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삶만을 살았으며 육체를 초월한 어떠한 것도

결코 알지 못했다면 죽음은 몹시 추하고 불쾌

하며 고통그러운 것이 될 것이다.

 

그때 죽음은 번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았다면 만일

음악과 시를 사랑하고 꽂과 별을 바라보고

 

사랑했다면 그리고 무언가 비육체적인 것이

의식속에 스며들었다면 죽음은 그리 나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평정속에서 죽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은 아니다. 만일 내면에서

초월적인 그 무엇을 접촉한다면 만일 자신이

 

더 이상 육체도 마음도 아닌 존재의 중심에서

즉 육체적 쾌락도 음악이나 시문학이나

그림같은 정신적 쾌락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존재의 중심에서 자신의 무(無)를 들여다 본다면

당신은 오로지 순수한 자각이  순수한 의식이

된다. 그때 죽음은 위대한 축복이 그리고 위대한

 

깨달음이 그리고 위대한 폭로가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내면에 있는 초월적인 그 무엇을

알고 있다면 죽음은 당신에게 우주속의 초월자를

 

보여 줄 것이다. 그러면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며 그것은 신과의 만남 신과의 교제가 될

것이다.

 

                                     오쇼의 죽음의 예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