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은 얻어졌다
이번에는 물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물러나야 하는지를 모른다.
당신은 꿈속에서 까지 생계를 꾸린다
당신은 누워서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내일이 올지 안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실재로는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오늘인 것이다.
당신의 죽음이 일체의 미래를 파괴한다는 것을
모른 채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명헤 지도록 하라
순간에 머무르도록 하라.
그것은 가능한 총체롤 살아보라.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아무런 죽음도 모를 것이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은
아무런 죽음도 모른다.
그는 죽지 않게 한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내일의 일이기 때문이다.
삶은 오늘의 일이다.
죽음은 미래에 속해있다.
이것이 물러난다고 하는 것의 의미인 것이다.
만일 나에게 물러난다고 하는 말을 번역하라면
나는 그것을 산냐스 라고 부를 것이다.
당신은 인생의 종말에 물러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매일같이 물러난다
매 순간 물러난다.
당신이 하나의 순간을 즐긴다면 그것이 물러남이다.
그것이 바로 산냐스인 것이다.
당신이 회사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올 때는
회사는 회사에 두고 오는것이 좋다.
회사를 당신의 머리속에 넣어가지고
다니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머리는 두통을 일으킬 것이
틀림 없다.
두통을 일으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큰것을 회사 단위를 당신 머리에 집어넣고
다닌다.
그것은 무거울 것임에 틀림없다.
자기 머리에 시장을 고스란히 넣고 있다면
무거울 것이다.
파리바이(아슈람의 재정이나 사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도인)
는 주식시장에 가 있다.
그러면 알고 있을 것이다.
주식시장을 머리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다면 미친 짓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 하여 그곳에서 물러나는가를
터득하고 있다.
매일 물러남.
물러남 이라는 마로 그 말은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이 노년이라고 하는 무능력이라고 하는
느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65세가 지난 어느때나 죽음이 임박한 곳에는
사람은 물러난다 아니다.
믈러난다고 하는 말은 대단히 아름답다.
그것이 샨냐스의 의미인 것이다.
불러난다는 것은 휴식을 의미한다.
일은 끝났다.
이번에는 물러나서 그것을 즐기는 것이 좋다.
줄거움을 연장시키지 말라.
그것이 물러선다는 말의 의미인 것이다.
지금 여기서 즐기도록 하라.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
그것이 하늘의 도이다
결코 극단으로 치닫지 말라.
한상 한계내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한계를 분간하는 것 그것이 규칙이다.
산냐신의 규정인 것이다.
항상 한가운데(중용)에 머물러라
항상 만족하라
좀더를 갈망하는 일은 없다
수평선을 떨쳐버리고 수직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물러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춤만될 것이다.
당신은 삶이 당신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대의 충족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전면적인 균형 정숙의 깊은 순간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깨달음
해탈
모크샤
니르바나라고 불러왔다.
명명하고 싶다면 무엇이라도 좋다
오쇼의 노자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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