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가장 깊은 중핵은 비실존이다.
있는것(有)의 기반은 무(無)이다.
그리고 내가 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사물이 없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형태는 무형이라는 토대위에 존재한다
형내는 무형에서 나타나온다
마치 파도가 바다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무형속으로 녹아 없어져 간다.
이름은 무형에서 솟아 나와서 근원으로 가라앉았다가
되돌아 와서 다시 무명이 된다.
삶은 죽음에서 솟아 올라
다시 죽음으로 이행한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 끼리는 반대가 아니라
그들은 상호보완적이라는 사실이다.
죽음은 삶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비존재는 존재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비실존은 실존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든 이해를 초월한 같은 현상의
두가지 대극에 지나지 않는다.
때때로 그것은 그 자신을 실존으로 표현하고
때로는 비 실존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양쪽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이 사실을 가능한 한 깊이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이해로 향하는 당신들의 사다나
(종교적인 정신적인 과제나 수행)와 당신들의 모든
노력이 그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하나의 비실존이 될 준비가 없는 한
당신은 결코 진정한 실존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파라독스처럼 보인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자기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너희는 자기 자신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자기자신에게 매달리면 너희는
파멸하게 될 것이다.
예수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비실존에
발을 들여 놓을 때 비로소 실존은 구원받을 것이다.
오쇼의 장자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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