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라즈니쉬와 그의명상글.

사제는 세상에서 가장 교활한 사람이다.

별관신사 2022. 7. 4. 08:08

약삭빠른 사람이여 장사꾼이다. 그들은 항상 

장사의 기회만 엿본다. 만약 예수가 살아 있다면

사제는 예수를 무서워할 것이다. 

 

장사꾼은 예수에게 오지 않는다. 오직 도박꾼만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수에게 온다.

예수와 함께하는 일은 위험하다. 언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지 그래서 언제 자신도 십자가에

매달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가 죽으면

예수는 장사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사제와 

교황 이만 랍비들이 몰려온다. 그들은 지식을

추구하고 논쟁을 좋아하며 교리를 따진다.

 

그들은 교의와 교리를 만들고 사이비 종교를 

만든다. 참 종교의 죽음에서 사이비 종교가

태어나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이비 종교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보통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혜안을가졌다. 말년에 그는 미치고 말았지만 

미친사람에게서도 종종 예리한 지성을 찿아볼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지성 때문에 미치는지도

모른다. 니체는 이렇게 선언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독교인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었다.

 

그 후로 단 한사람의  기독교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참으로 옳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예수는 기독교라는

말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예수는 아랍어를 

 

사용했으며 랍비들이 쓰던 히브리어를 조금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희랍어는 전려 알지 못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희랍어이다. 기독교라는 말은

 

희랍어이다.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말에서

나왔다. 하지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도 기독교

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메시아라는 

말이였기 때문에 예수는 메시아라는 말 밖에 

모르고 살았다. 예수가 생생하게 살아서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쏟아 줄 때 사람들은

그를 피했다. 그러나 예수가 죽자마자 사제들은 

투자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제들은 붓다나

 

예수 노자등이 죽으면 당장 그들의 죽음위에

모여들어 교리를 만든다. 그리고 주검위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다. 만약 예수가 다시 돌아오면

 

교황이 먼져 나서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칠 것이다. 교황이 하는 장사를 예수가 망쳐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의 장사를 망쳐

 

놓는것 그것이 2000년 전 예수가 한 일이였다.

왜 랍비들은 예수에게 분통을 트뜨리는가?

랍비의 장사는 아주 잘되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예수는 인생을

 

묵상하라고 진리를 탐구하라고 외쳤다.  기존

사회는 그런것을 가만 두지 않는다. 진리를  찿고

탐구하면 기존사회가 주검위에 서 있는 허상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다시 오겠

다고 약속했지만 확신을 가지고 말하거니와 그는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 경험은 한번으로

 

충분하다. 누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고 싶어

하겠는가? 당시는 사람들이 완고하고 편협한

유대인들이라서 나의 혁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위로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위로라도 할 수 없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기독교인라고 하는 사람들 그를 

 

십자기에 매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저 사람들을 용서헤 주십시요 자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라고 기도했다. 예수가 다시 온다면 어떤 기도를

하겠는가? 어쩌면 저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저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다른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할 것이다.

사이비 종교는 장사다. 종교적인 언어를 늘어

 

놓지만 그들에게는 체험이 없다. 과거 언젠가

그곳에서 꽃치 피어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세윌이 흘러가면서 사제들이 그 향기의 대리

 

자로 나셨다. 그러나 그 누구도 향기를 대리할 수

없는 법이다. 향기는 꽃과 더불어 갈 뿐이다. 

그럼에도 사제들은 조화를 만들어 그 위에 향수를

 

뿌린다. 이것이 세상의 사제들이 하는 일이다. 

참다운 종교는 반역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종교는 전통이 반대를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나 붓다 마하비라 같은 사람과 전통을 고수하는

무지한 군중은 서로 같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붓다나 예수같은 사람들은 홀로 존재한다.

 

그들이 하는 말은 선택된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세상에 던지는 말들은 저세상의 차원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들과 가슴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이해할 길이 없다. 그래서 오해하기 십상이다.

대중들은 예수를 오해했다. 알힐라즈 만수르를

오해했다. 참다운 종교인의 주위에서는 무성한 

 

오해만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가 죽으면 고요해 진다.

그리고 사제들이 그를 이용해 장사를 해먹는다.

유대인들은 지난 2000년동안 피눈물나는 고생을 했다. 

 

장사의 기회를 놓쳤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이다. 

지금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놓쳤다.  사실 유대인은 장사의 

 

재주가 탁월한 민족이니 말이다. 이런 야기를 들었다.

바티칸에서는 매년 특정일에 랍비 대표가 두루말이를 

손에 쥐고 베드로 광장으로나가 교황을 상견하는

 

전통에 수백년간  내려오고 있었다. 수천면의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모여 교황과 랍비 대표의 상견행사를 

구경했다. 하지만 둘이 만나서 무슨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행사는 랍비가 절을하며 두루말이를

건네면 교황이 절을 하며 그 두루말이를 받아 드는것이

전부였다. 이튿날이면 그 두루말이는 랍비에게 되돌아

 

왔으며 랍비는 이듬해 상견을 위해 두루말이를 보관하곤

했다. 지난 2000년 동안 아무도 구루말이 내용에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교황은 대체 두루말이

 

안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굼금했다.무슨 전통이 이렇게 

내려오는 것일까? 매번 랍비가 교황에게 주고 다음

날이면 랍비에게 되돌아 가고 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교황은 그 두루말이를 펴

보았다.2000년동안 물건이니 참으로 많이 낡아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그 두루말이는 다름 아닌 최후의 만잔의 계산서였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제발 만찬비용을계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가 만찬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이다.

 

                                          오쇼의 위대한 만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