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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산책-토끼

별관신사 2014. 5. 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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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 테야//” 한번 흥얼거려 보시라. 그러다 보면 어린 꼬마 시절의 엄마, 잊었던 소꿉친구, 머리에서 멀어진 담임선생님 생각도 떠오를 것이다!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이야기에서 절구질하는 ‘달 속의 토끼’까지 토끼는 우리와 가까운 동물이다.

오르막에서는 날쌔지만 내리막에서는 젬병인 토끼

며칠 전 매일같이 다니는 오후, 산책길 산굽이에서 산토끼 녀석을 만났다. 부스럭부스럭, 저만치에서 팔딱 뛰어가다가 언뜻 멈춰 서서 귀 쫑긋 곧추세워 두리번거리더니만 그만 후딱 줄행랑을 친다. 산꼭대기에 기온이 더 빨리 떨어지니 추위를 피해 산토기가 산발치로 내려왔다. 길고 힘 좋은 뒷다리를 냅다 뻗대고 달리는 뜀박질선수가 산토끼 아닌가.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훨씬 길어서 오르막엔 날쌔지만, 내리막에는 젬병이다. 그래서 토끼몰이는 산 위에서 아래로 한다.


산토끼는 얼어붙은 듯이 가만히 그 큰 귀(10cm)를 오뚝 세우고 사방, 머리 위까지 노려본다. ‘놀란 토끼’란 말이 그런 모습에서 온 것이리라! 족제비나 맹금류(猛禽類) 같은 자기를 성가시게 하는 천적을 경계하느라 그런다. 놈들은 윗입술(上脣)이 세로로 짜개졌으니, 사람에서 언청이(입술갈림증, cleft lip)를 영어로 ‘harelip(토순, 兎脣)'이라한다. 그리고 토끼도 개, 고양이와 같이 다섯 발가락 끝에 힘을 실어 걷고 뛰는 지행 동물(趾行動物, digitigrade animals)이다.


토끼는 중치류며 산토끼와 집토끼가 있다

흔히 쥐 무리와 토끼 무리를 묶어 설치류라 하는데 둘은 조금 다르다. 설치류(齧齒類,rodent)인 쥐는 앞니(incisor)가 위·아래 각각 1쌍씩(4개)으로, 끌 모양으로 야문 곡식을 쏠아 닳아빠지는 만큼 일생동안 자란다. 그리고 중치류(重齒類, logomorpha)인 토끼는 쥐처럼 위아래 각각 1쌍의 크고 긴 앞니가 있고, 위턱(윗니) 안쪽에 작고 짧은 이가 두 개 더 있는 것이(때문에 重齒類라 하며 앞니가 모두 6개임) 설치류와 다르다. 앞의 것은 쥐처럼 끝이 예리하면서 평생 자라지만 뒤의 것은 작고 뭉툭하면서 자리지 않는다.

그리고 전 세계에 사는 30종이 넘는 토끼를 대별하면, 굴을 파고 사는 굴토끼류(穴兎類)인 ‘집토끼(rabbit)’무리와 굴을 파지 않고 사는 멧토끼류(野兎類)인 ‘산토기(hare)’로 나눈다. 전자는 어미가 굴(穴)을 파고 그 안에다 털을 뽑아 깔아 새끼를 낳으며, 새끼는 태어날 때 눈이 멀었고 털도 나지 않아 새빨간 맨살로 옴짝달싹도 못하지만, 후자는 맨땅에 터 닦아 새끼를 낳고, 새끼는 조숙하여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얼마 후에 온 사방을 뛰어다닌다. 캐나다나 알래스카 등 추운 곳에 살면서 겨울에는 털이 순백색, 여름에는 노란색·회색·갈색으로 바뀌는 눈덧신토끼(snowshoe hare)는 후자에 속하고, 산토끼가 일반적으로 집토기보다 덩치가 크고 귀가 더 길다.

하얀 집토끼, 알고 보면 알비노

우리가 즐겨 키우는 집토끼는 전신의 털이 흴뿐더러 눈알이 빨갛고 귓바퀴에도 굵은 핏줄이 흐른다. 흰쥐나 흰 토끼, 백사(白蛇)나 흰 까마귀도 자연계에 나타난 알비노(albino)로 이들은 전신이 희어서 천적 눈에 잘 띄어서 쉽게 사냥감이 되기에 생존율이 떨어진다. 암튼 백색증(白色症, albinism)이란 멜라닌 색소(melanin pigment)가 눈, 피부, 깃털, 머리털에 생기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 백화현상(白化現象)이라고도 하며, 그렇게 생긴 백색생물체를 알비노라 한다.


이것은 타이로시네이스(tyrosinase)효소가 없어 생기는 것으로, 이 효소는 동식물 세포에 널리 있는 것으로, 단백질을 만드는 20개의 아미노산 중의 하나인 타이로신(tyrosine)을 산화시켜 멜라닌이나 다른 색소를 만드는 것을 촉매(觸媒)한다. 아주 가까운 식물의 예로 감자껍질을 벗기거나 토막 친 자리가 거무스름해지는 것도 그런 탓이다. 이는 유전하는 것으로 접촉이나 수혈 등으로 감염하지 않으며, 가끔은 돌연변이(mutation)로 생기는 수도 있다.

사람에서 17,000여 명 중 한 사람이 어떤 형태이든 알비노이며 70명에 한 사람꼴로 유전인자(albinism genes)를 가진다고 한다. 다른 형질발현에는 남녀차이가 없으나, 눈백색증(eye-albinism)에는 차이가 난다. 눈 백색증은 눈알의 저 안쪽, 상이 맺히는 망막 아래에 흐르는 핏줄을 검은 멜라닌 색소가(없어서) 덮지 못하므로 거기에 흐르는 빨간 피 색이 반사되어 눈동자가 붉게 보이는 것이다. 이 증세는 X 염색체와 관계하는 반성유전(伴性遺傳)이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색맹 유전과 동일하다. 흰 집토끼의 눈이 붉은 것도 이와 같은 것으로, 홍채(虹彩)에도 멜라닌 색소가 없어 투명하기에 눈 안의 피가 고스란히 빨갛게 비춰 보인다. 허나 백색증이라고 성장이나 건강, 발생(성), 수명에 지장이 거의 없다 한다.

토끼가 똥을 먹는 사연

다음은 토끼 똥 이야기다. 초식동물을 소화기관을 중심으로 나누면, 소나 염소같이 되새김위를 갖는 반추동물(反芻動物,ruminator)과 맹장에서 주로 소화가 일어나는 토끼 같은 대장소화동물(大腸消化動物,hindgut digester)로 나눈다. 토끼의 맹장은 위장의 10배가 넘으며 다른 대장과 함께 전체 소화기관의 40%를 차지한다.

토끼가 오물오물 잘게 씹어 먹은 풀이나 나무줄기, 껍질에 든 여러 영양소가 위(胃)에서 소화(=가수분해)되어 소장에서 흡수하고 대장의 결장(結腸, colon)으로 내려가는데, 섬유소(cellulose) 같이 질긴 것들은 코끝만치도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기에, 그것들을 역연동운동(逆蠕動運動)으로 결장에서 맹장으로 되돌려 밀어 넣는다. 맹장에는 반추동물의 위와 마찬가지로 세균, 원생동물을 포함하는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있어서 이것들이 다당류인 섬유소를 이당류인 셀로비오스(cellobiose), 단당류인 포도당(glucose)으로 분해(발효)할뿐더러 비타민이나 무기염류도 생성한다.

토끼는 괴이하게도 두 가지 똥을 누며, 그 중 하나를 꺼림칙하게도 주워 먹는다. 토끼 똥은 우리가 흔히 보는 딱딱한 환약(丸藥)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검고 끈적끈적하며 묽은 것(soft feces)이 있다. 후자의 점액성 대변은 토끼가 지체 없이 후딱 먹어버리니 우리 눈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 똥은 맹장에서 발효한(4~8시간이 걸림) 것으로 묽은 변은 56%가 세균이고 24%가 단백질로 아주 귀중한 양분이다. 맹장에서 나간 양분 덩어리인 이것을 대장에서 흡수할 수 없기에, 그것을 다시 주워 먹어서 재차 위(胃)에서 6시간 넘게 단백질이 주성분인 세균까지도 죄다 소화시킨다. 다시 말해서 맹장에서 1차 소화시킨 것을 다시 위에서 재 소화(double-digestion)시킨다고 하니 예사로운 동물이 아니다! 그럼 코코볼 닮은 똥그란 똥은? 묽은 변을 재차 소화시켜 딱딱해진 것으로 영양소가 거의 없는 똥이다. 춘란이나 칡 줄기, 인동넝쿨 뜯고 갉아먹은 토끼 똥은 한약(韓藥)에 쓴다.

토끼가 죽으면 개는 삶아지고 여우는 운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토끼를 다 잡으면 냉큼 사냥개를 삶고, 토사호비(兎死狐悲)라, 토끼가 죽으니 여우가 슬퍼하더라. 이것은 ‘악어의 눈물’이 아닌 ‘여우의 눈물’이렷다. 애당초 토끼 둘을 잡으려다 하나도 못 잡는다. 모름지기 한우물을 파야 한다!

권오길 /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생물의 죽살이], [꿈꾸는 달팽이], [인체 기행] 등이 있다. 한국 간행물 윤리상 저작상(2002), 대학민국 과학 문화상(2008)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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