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으로 가는 명상.

신성(神聖).

별관신사 2019. 6. 7. 03:27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성의 개념을 자세히 살펴

보면 거기에 다음과 같은 측면은 발견하게 된다.

감추어진 동떨어진 미지의 원천으로 인한


현상에 접하게 될 때 사람들은 신(神)이란

단어를 흔히 사용한다. 기존 원인의 자연적

근원인 이차의 생이 손잡히기를 거부할 때


사람들은 이 신이라는 용어에 자주 기대게

된다. 원인에 이르는 실마리를 놓치자 말자

또는 사고의 흐름을 더 이상 찿아가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원인을 번번히 신의 탓으로

돌려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때까지

해오던 원인탐구의 노력을 중단하고는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현상의 결과를 신의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를

신으로 대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 이제 신은 인간이 경외심 가득한

마음으로 듣는데 익숙해져 버린 하나의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폴 아힌리히 디트리히홀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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