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걸인이나 황제가 죽을 때 그들의 합은
똑같다. 걸인은 길거리에서 살았고 황제는
궁전에서 살았다. 그러나 합은 같다.
부자와 가난한 자 성공한자와 실패한자
합은 모두가 같다.
그대가 삶의 모두를 관망할 수 있다면
그때 그대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일어났는가?
삶은 공평하지도 불공평하지도 않다.
삶은 그대의 배열에 대해 전적으로 무관심
하다. 삶은 그대가 해놓은 배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삶은 선물이다.
그대가 배열을 바꾼다 해도 전체는 바뀌지
않는다. 부자는 더 좋은 음식을 구해 왔지만
반면에 굶주림을 잃었다. 그는 굶주림의
격렬함은 진정으로 느낄 수 없다.
비율은 항상 같다. 그는 멋진 침대를 구했다.
그러나 침대와 더불어 불면증이 온다.
그대는 잠을 위해서 좀 더 좋은 배열을 했다.
그는 이제 잠 속으로 힌두교가 말하는 사마디
(삼매경)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잠들수가 없다.
그는 배열을 바꾸었다. 걸인을 바깓에서
길거리에서도 잠이 든다. 교통이 혼잡해도
걸인은 잠에 빠진다.
그는 아무런 침대도 없다. 그가 잠자고 있는
곳은 평평하지도 않고 딱딱하고 불편하지만
그는 잠이 든다.
걸인은 좋은 음식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구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왕성한 식욕을
갖고있다. 전체적 결과는 같다. 전체는 항상
같다. 그러나 전체는 통찰되어야 하고
관망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대는 명확한
시각이 필요하다. 전체를 보기 위한 눈이
필요하다. 마음은 단편만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아침을 본다면 그것은 저녁을
보지 못한다. 만일 마음이 저녁을 본다면
아침은 잊혀진다. 마음은 그 전체 하루를 볼 수
없다. 마음은 단편적이다.
오직 명상적인 의식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전체는 항상 합이 같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자는 배열을
바꾸지 않는다. 동양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비로 이 때문이다.
혁명은 배열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것은 언제나 합은 같다 . 자연이 주는 합은
언제나 같다. 결과는 공평하다. 궁극적으로
볼 때 말이다.
오쇼의 장자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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