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한 마리가 누이동생을 데리고 길을 가다가 탐스럽고 향긋한 포도
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포도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먹음직스러운
포도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포도가어찌나 높이 매달려 있었던지
아무리 황새처럼 모두뜀을 뛰어도 팔이 닿지 않았다.
한참을 뛰락내리락 포도나무와 씨름하던 동생 여우는 이렇게 내뱉었다.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따 봐야 먹지도 못해. 그냥 집에 가서 엄마한테 점심을
차려 달라는 게 낫겠어. 안 갈래?
묘한 라이벌 의식을 느낀 오빠가 곧바로 대꾸했다. 싫다. 넌 지금 저 포도를
따지 못하는 네무능을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난 달라.
난 관념론자가 아니니까 기꺼이현실과 맞서겠어. 저 포도는 분명히 지금까지
먹어 본 어떤 것보다 달콤할 거야. 난 약간이라도맛을 볼 때까지 단념하지 않아.
그리하여 누이동생은 총총히 그 자리를 떴고, 오빠는 고집스럽게도 포도를 따려고
계속해서뛰어올랐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갈수록, 그래서 노력이 가망 없어질수록,
그 포도가 최고로맛있을 것이라는 여우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져 갔다.
좌절감이 심해져서 이내 발작증세를 일으켰다. 마침내 그 여우는 자기 꼬리를
물어뜯겠다고 뱅글뱅글 돌면서 정신없이 캥캥거리기 시작했다. 여우의
울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서 총을 들고 나온 포도밭 주인이 여우의 머리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총알은 오빠 여우의 머리를 날려보냈다.
교훈: 한번 해 봐서 안 되면, 다시 하지 말라.
파라독스이솝우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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