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이야기.

오이디푸스의 이야기

별관신사 2012. 11. 19. 06:44

이방인은 쉽사리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
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가 주인을 괴롭힐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강요에 못 이겨 마침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오이디푸스입니다. 나와 함께 동반하여 내 고통을 덜어 주느
라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이 두 젊은 여자는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랍니 다."

"그녀들은 당신과 닮았소. 당신 누이인가요, 딸들인가요?"
테세우스가 말을 막으며 물었다. 오이디푸스는 생각에 잠겨 테세우스의 질
문을 못 들은 양 대답 없이 자기 얘기를 계속해 나갔다. 내 가장 오랜 기

억은 내 나이 일곱살 때 일이지요. 나는 코린토스 왕궁의 크고 아름다운
방에서 살고 있었어요. 잠에서 깨면 시녀가, 아시다시피 왕가의 아이들은
시녀들이 돌봐주지요, 부모님들이 식당에서 기다린다고 말해주곤 했죠. 아

버지는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였고 어머니는 메로페 왕비였어요. 그들은
날 맞으며 생일 선물을 주었어요. 그리고는 짐짓 위엄 있는 목소리로 아버
지가 내게 말했지요.

"넌 내 외아들 오이디푸스이다. 그러니까 넌 언젠가 코린토스의 왕위를
계승할 거다. 이제 철들 나이가 되었으니 앞날의 과업들을 준비하기 시작
해야 한다."

그날 이후 제게는 가정교사 한 명이 모셔졌어요. 그리고 저는 공부와 신체
단련과 놀이로 시간을 쪼개 쓰게 되었지요. 이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
는데, 그때가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열

일곱 살이 되자 아버지는 저의 교육을 충실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나라들을 몇 달 간 여행할 것을 권했지요. 바로 그 여행 초반부에 유명한
델포이의 신탁에게 찾아가 내 운명을 알아봐야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

랐어요. 테세우스 당신도 아시다시피, 그 아폴론의 무녀는 모든 인간의 미
래를 알고 있어 누구에게 나 가르쳐주긴 하는데 대개는 아주 애매하고 모
호한 방식으로 말해주곤 한다잖아요. 한데 내 경우에는 그 대답이 더할 수

없이 분명한 것이었어요. 그녀가 점친 내 운명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
와 결혼하게 될 것' 이라는 거였어요. 난 한번도 신탁이나 점 따위를 크게
믿지는 않았지만서도 그 같은 예언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졌고 그것이 실현

되는 걸 피하려는 생각에서 코린토스 왕국과 부모로부터 영원히 멀어져야
겠다고 그 즉시 결정했어요. 나는 몹시 언짢은 기분으로 정처 없이 그저
동쪽을 향해 걸어갔어요. 며칠 후 내게 닥친 중대한 사고는 바로 그런 좋

지 않은 기분 상태 때문이었을 거예요. 좁다란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
고 있었는데 반대 방향에서 말을 탄 다섯 남자들이 제 쪽으로 달려 오는
게 보였어요.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거친 목소리로 길을 비키라

고 소리를 질렀어요. 거절하자 칼을 뽑아들고는 날 치려 했지요. 하지만 내
칼이 좀더 빨랐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죠. 그러자 다른 4명의 남자
가 즉시 말에서 내려 나를 공격했어요. 분노로 힘이 뻗친 저는 세 남자를

한꺼번에 죽여버렸어요. 그러는 사이 네번째 남자가 도망쳤어요. 난 그것이
정당방위라고 생각했기에 아무 후회도 없이 다시 길을 떠났지요. 몇 달후
저는 테베의 왕국에 들어서게 되었어요. 그 나라는 온통 비탄에 잠겨 있었

는데 주민들을 통해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몸은 암사자인데 여자의
얼굴과 가슴을 하고 어깨에 2개의 작은 날개가 달린 이상한 괴물이 그 나
라를 공포로 뒤덮고 있었던 거예요. 그 괴물의 이름은 스핑크스였는데, 테

베의 입구에 있는 바위 옆에 웅크리고 앉아 그곳을 지나는 모든 이에게 수
수께끼를 내고 있었어요. "수수께끼를 하나 낼 터인데, 답을 맞추면 지나가
게 하고 못 맞추면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여행자들은 이런

저런 답을 말했지만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었어요. 그러자 스핑크스는
그들 모두를 잡아먹었던 거예요. 그 이후 누구도 감히 테베를 방문하지도,
테베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되었고 나라의 삶이 완전히 마비되어버렸지

요. 당시의 제가 처해 있던 열악한 상황으로 보아 저로서는 별로 잃을 게
없다 판단이 섰고, 그래서 스핑크스를 대면해보기로 작정했지요. 그는 나를
자기 앞에 앉게 하고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를 냈어요.

"아침엔 네 발로 걷고, 점심때는 두 발로 걷고 저녁이면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지?"
그리고는 평소의 자기 습관대로 3분 동안 흘러내리는 모래시계를 뒤집어놓

았어요. 제가 답을 찾는 데는 2분밖에 안 걸렸죠.
"그건 인간이다. 인간은 아기 때는 네 발로 기고, 어른이 되면 두 발로
서게 되며, 늙으면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군중들은 박수를 터뜨렸지요. 화가 난데다 기만적인
자기 성격을 드러내느라 스핑크스는 군중 중 누군가가 내게 답을 귀뜸해줬
을 거라며 두번째 질문을 하나 더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두번째 수수

께끼는 "서로를 낳고 있는 두 자매는 누구인가?"
는 것이었고, 나는 "낮과 밤"이라는 답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지요. 그렇게
되자 스핑크스는 더 이상 저의 승리를 부인할 수 없었지요. 그는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하늘로 날아가버리려고 앉아 있던 바위에 서 몸을 위로 날렸
어요. 하지만 작은 날개는 몸을 지탱하지 못했고 그는 땅으로 곤두박질치
면서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어요. 스핑크스를 이겨낸 대가로 저는 테베의

왕실에 인도되어 이오카스테 왕비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녀를 보는 순간
아주 강한 호감이 느껴 졌는데, 그것은 단순한 호감 이상의 어떤 깊은 감
정이었어요. 삼십대 정도 되어보였던 그녀의 얼굴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갖게 했어요. 그녀는 자기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했다면서 저
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어요. 식사를 하는 동안 제가 누구이며 왜 부모와 나
라를 떠나게 되었는가를 그녀에게 얘기해주었어요. 얘기를 듣더니 그녀는

슬프게 웃으며 말했어요.
"신탁의 예언을 그렇게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해요. 그 아폴론
의 무녀는 상상력이 모자라서 늘 똑같은 얘기만 되풀이 하는군요. 그녀가

당신에게 한 얘기는 20년 전 제게 한 얘기와 꼭 같아요. 제 얘기를 들어보
면 곧 그걸 수긍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이오카스테 왕비는 자기 얘기를 시작했어요. 그녀는 아주 젊었을

때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와 결혼했대요. 곧 이어 임신을 하게 되었고, 태어
날 아이의 앞날을 알아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델포이의 신탁을 찾아갔더래
요. 그러자 신탁은 "그 아이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와 결혼

할 것"이라는 말을 했대요. 그같은 예언에 놀란 라이오스 왕은 아이를 태
어나는 즉시 죽여버리기로 했고 하인을 시켜 근처 숲의 나무에 아이를 매
달아버렸다는 거예요.

"그러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죄는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할 거예요. 그 일로 심한 타격을 받은 제 남편 라이오스 왕은 번번
히 저를 저버리고는 긴 여행을 핑계로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여행을 다니던 중 그는 도적 무리의 공격을 받아 죽고 말았어요. 과부가
된데다 아이도 없이 저는 테베의 왕국을 다스려야 하는 막중한 일을 맡게
되었지요."

이오카스테의 얘기에 감동되기도 했고 그녀의 청도 있고 해서 저는 테베
에 며칠을 더 머무르기로 했지요. 우리가 서로에 대해 느꼈던 호감은 금세
강렬한 감정으로 바뀌었고 저는 이오카스테와 결흔하여 테베의 왕이 되었

답니다. 이렇게 15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그간 아들 둘에 딸 둘을 갖
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의 부친인 폴리보스 왕이 서거했다는 소식
을 들었어요. 그 소식은 신탁의 예언이 틀렸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지요.

그런데 몇 달 전, 온 나라에 갑자기 페스트 병이 확산되어 평화로운 시대
가 끝나고 말았어요. 의사들은 그 질병을 물리칠 수 없노라고 진단했고, 저
는 국민들의 요청으로, 비록 저 자신은 심한 회의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델포이의 신탁을 찾아가 조언을 듣기로 결심했어요. 신탁은 옛 왕인 라이
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내어 응징해야만 전염병이 사라질 거라고 대답했어
요. 그 말을 진짜로 믿지는 않았지만 테베 국민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저는 15년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한 정황 조사를 다시 하기로 했어
요. 그리고 그 일을 유명한 점쟁이 테이레시아스에게 맡겼어요. 테세우스
당신도 그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 있지요?

"테이레시아스를 누가 모르겠소?"
테세우스를 비롯한 당시 그리스의 모든 사람들은 테이레시아스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일부 독자들은 그를 잘 모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서

잠깐 오이디푸스의 얘기를 중단하고, 장님 점쟁이 테이레시아스에 대해 간
단히 언급하는 게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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