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레시아스는 필요한 모든 증인을 소환할 수 있다는 조건하에 수사를
맡기로 했지요. 하지만 3주일이 지나도록 수사의 진척 상황을 전해 들을
수가 없었어요. 놀란 저는 그를 왕궁으로 소환했지만 그는 나타나지도 않
았어요. 마침내 저는 화가 나서 직접 그를 찾아갔어요. 그는 거북한 태도로
저를 맞이하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면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였어요.
저는 화를 벌컥 내고는 그의 무능함을 질책했어요. 그리고는 신탁이나 점
쟁이의 형편없는 복수보다 더 나을 게 없다고 말해줬어요. 그러자 자존심
이 상한 그가 소리쳤어요.
"그토록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든 상관하지 않
고 모든 진실을 말해주겠소. 1이간 후 궁으로 갈 테니 거기서 기다리시 오."
약속한 시간에 저는 이오카스테와 함께 왕실에서 테이레시아스를 맞이했어
요. 그는 저에게 첫번째 증인을 출두시킬 동안 벽걸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사람은 나이가 오십 정도 되어보였는데 얼굴에
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그가 자리에 앉자 테이레시자스는 이오카스
테에게 물었어요. "이 사람을 알아보겠소?"
"네. 그는 라이오스 왕의 마지막 여행에 함께 했던 4명의 수행자 중 하
나죠. 그 숙명적인 여행의 유일한 생존자이고, 라이오스 왕과 그 수행원들
이 어떻게 수많은 도둑떼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는가를 내게 말해준
바로 그 사람이에요."
테이레시아스는 증인 쪽으로 몸을 돌려 물었다. "당시의 일들이 네가 말한
그대로 벌어졌느냐?"
그 남자는 고개를 떨구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사실은 라이오스 왕과 3명의 수행자들은
단 한 사람에게 죽었어요. 전 그들처럼 죽고 싶지 않아서 말을 타고 도망
쳤어요. 그리고 돌아와서는 저의 비겁함과 배신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 떼
거리의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던 거예요." "그 이후 넌 무얼 하며 지냈느냐?"
는 테이레시아스의 질문에 ,
"외딴 마을에 은거하여 오늘날까지 테베의 땅에 발을 내딛지 않고 지냈지요."
"지금도 넌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
"그의 얼굴은 제 기억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어요."
저는 테이레시아스가 부르기도 전에 벽걸이 뒤에서 나왔어요. 그 남자는
잠시 날 쳐다보더니 소리쳤어요. "저자예요?"
이미 짐작하긴 했지만, 그러한 확언은 제 가슴을 짓눌렀답니다. 당황하는
제 모습을 본 이오카스테가 저를 도와주려 했어요.
"자책할 것 없어요. 라이오스 왕이 먼저 당신을 자극했던 거예요. 게다가
당신은 바로 오늘까지도 당신이 죽인 사람이 누구였는지 몰랐잖아요."
그러자 테이레시아스가 말하길
"그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게 또 있지요. 하지만 곧 모든 걸 알게 될 겁니 다."
그리고는 두번째 증인을 들어오게 했지요. 그는 왕실의 가장 오래 된 하인
중 하나였는데, 30년 전 라이오스 왕으로부터 이오카스테가 낳은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던 바로 그 하인이었어요. 테이레시아스는 그에게 말
했어요.
"라이오스 왕이 네게 맡긴 일을 어떻게 했는지, 어제 내게 고백했던 그
대로 되풀이해라." 하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어요.
"아이가 불쌍하긴 했지만 주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전 마지막 순간에, 라이오스 왕이 아이를 숲속의 나무에 매달라고는 했지
만 몸의 어느 부분을 매달라고 정확히 지정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지요. 그래서 아이의 목을 매다는 대신 다리를 매달았어요. 그리고는 울
어대긴 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아이를 그대로 버려두고 숲을 떠났어요.
궁으로 돌아와서는 거짓 없이 임무를 완수했노 라고 말했지요."
저와 이오카스테가 끼여들 틈도 주지 않고 테이레시아스는 세번째 증인을
들어오게 했어요. 그 역시 꽤 나이 든 사람이었고 즉시 자기 얘기를 풀어
놓았어요.
"저는 코린토스의 양치기입니다. 30여 년 전 어느 핸가. 가뭄으로 저희
나라의 풀밭이 온통 메말라서 이곳 테베 근처로 양들을 먹이러 나온 적이
있었어요. 숲을 지나는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갓난애 울음 소리가 들렸어요.
다가가보니 어떤 애기가 나뭇가지에 다리가 묶인 채 울고 있었어요. 저는
아이를 나무에서 풀어 돌봐주었고 양들의 젓을 먹여 키웠지요. 그리고 며
칠 후 그 애를 코린토스로 데려왔어요. 자손이 없던 폴리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는 제가 주워온 아이를 양자로 삼았고. 그들은 그 애가 발견되었을 당
시의 상황을 기억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오이디푸스 즉, '부풀어오른 발'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답니다."
나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어버렸어요. 그렇게 해서 델포이의 예언은 정확히
실현된 것이죠. 내가 도망쳤던 폴리보스와 메로페는 내 진짜 부모가 아니
었던 거예요. 운명을 피한다고 믿었는데 오히려 서둘러 그것을 마주한 꼴
이 되었어요. 나는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의 살인자였고, 어머니인 이오카스
테와 결혼을 한 거예요. 내 4명의 자식들은... 좀전에 테세우스 당신이 나와
함께 온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저의 누이인지 딸인지 물었지요? 그때는
감히 대답을 못했는데, 이제 당신도 알게 되었을 거예요. 그녀들은 내 누이
이자 딸들이라는 사실을. 오이디푸스는 복받치는 감정으로 목이 메어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러더니,
"제가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몹시 창백해진 이오카스테는
아무 말도 없이 왕실을 나가버렸어요. 잠시 후 불길한 생각이 들어 그녀를
찾아 침실로 갔어요. 제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목을 매어 자살해버린
후였어요. 처음엔 저도 그녀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제 아이들을 고아
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엄청난 죄를 벌하기
위해 저는 제 스스로 눈을 도려냈어요. 다음날로 저는 테베에서 추방당했
지요. 눈은 멀고 가진 것도 없이, 수치심과 고통에 빠져 있던 저는 딸들의
헌신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아마 오래 전에 죽었을 겁니다. 안티고네와 이
스메네만은 저를 저버리지 않았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저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모두들 제 앞에서 문을 굳게 닫아버렸어요. 이제 더 이
상 제게는 조국도 집도 없어요."
"그건 당신의 의지가 아니고 운명의 탓이오. 그러니 내가 보기에 당신은
죄인이 아니라 희생자일 따름이오. 원한다면 이제 아테네가 당신의 조국이
고 내 집이 당신의 집이 될 것이오."
라고 테세우스가 말했다. 그리하여 오이디푸스는 테세우스의 집에 머물렀
고, 그로부터 몇 달 후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고 나자 안티고네와 이스메
네는 테베로 돌아갔다. 그녀들은 불길과 피에 휩싸인 왕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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