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직 알고 있는 고요는 소음이 멈출 때의 고요, 생각이 멈출 때의 고요뿐인데-그러나
그것은 고요가 아니다. 고요는 아름다움이나 사랑처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이 고요는
고요한 마음의 산물이 아니며, 뇌세포-그 전구조를 알고 <제발 좀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뇌세포의 산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뇌세포 자신들이 고요를 만드는데, 그것은 고요가
아니다. 또 고요는 주의력-그 속에서는 관찰자가 관찰되는 것이 되는-의 소산도 아니다.
그렇다면 마찰이 없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고요가 아니다.
당신은 그 고요가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래서 그것을 비교하고,
설명하고, 가져다가 묻어버리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설명될 수가 없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는 것이며, 그리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아는 것에 대해, 마음의 상처와
감언이설에 대해, 당신이 만든 모든 이미지와 체험들에 대해 매일 죽을 때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매일 죽음으로써 뇌세포들 자신이 새로와지고, 젊어지고, 순진해질 때에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천진성, 그 새로움, 그 유연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성질은 사랑을 낳지
않는다-그것은 아름다움이나 고요의 성질이 아니다.
소음이 끝남으로써 생기는 고요가 아닌 고요는 다만 작은 시작일 따름이다. 그것은 거대하고
광대하고 넓은 바다가 가려고, 측량할 길 없고 영원한 상태에로 가려고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신이 의식의 전구조와 쾌락, 슬픔, 절망의 의미를 이해했을
때에만, 그리고 뇌세포 자신들이 조용해졌을 때에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때 아마도 당신은 아무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고 어떤 것도 파괴할 수
없는 신비와 만나게 될는지 모른다. 살아 았는 마음은 고요한 마음이며, 살아 있는 마음은
아무 중심도 없고 따라서 아무 공간이나 시간도 없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은 무한하고, 또
그것이 유일한 진리이며, 그것이 유일한 실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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