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고독과 내적 공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존재하고, 가고,
기능하고, 나는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미덕이 자유가 있을 때에만 꽃피듯이 선은 공간
속에서만 꽃필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내적으로 우리는
자유롭지 않으며 따라서 거기엔 공간이 없다. 자기 자신 속에 이 광대한 공간이 없이는 어떤
값진 미덕이나 성질도 기능하고 자라나지 못한다.
그리고 공간과 침묵이 필요한 까닭은 마음이 외롭고, 영향받지 않고, 훈련되지 않고, 무수히
잡다한 경험들로 차 있지 않을 때에만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침묵할 때에만 명징할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동양에
있어서의 명상의 오롯한 목적은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가져오는데 있다-즉 생각을 통어하는
것인데, 이것은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를 되풀이하는 것과 같으며 그런 상태에서
그의 문제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기초를 놓지 않고, 즉 공포로부터 해방되고, 슬픔, 불안
및 그가 그 자신에게 놓은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어떻게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것은 의사소통이 가장 어려운 것중의 하나이다. 우리들 사이의
의사소통이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가-즉 내가 사용하는 말들을 당신이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두 사람, 즉 당신과 내가 한 순간 늦게나 한순간 빠르게가 아니라 동시에
강렬하고 같은 수준에서 서로 만나야 한다는 걸 뜻하지 않는가? 그리고 당신이 읽으면서 당신
자신의 지식, 쾌락 혹은 견해에 따라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때
그러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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