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

우주의 창성과 함께 시간은 생겨나고...

별관신사 2016. 5. 15. 06:38

우주의 정지와 함께 시간도 정지한다.  또한 시간은 허망한 삶 속에서나
윤회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존재하며 윤회가 멎을 때 시간도 멎는다.
시간을 낳는것은 움직임이 아니다.  시간은 시계바늘이나 천체의 움직

임에 의해 표시되듯이 단지 움직임에 의해 표시될 뿐이다. 그리하여
플로티누스도 말했듯이 시간은 움직임을 계량하기 위한 표준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처럼 속세에 한정된 마음의 개념인 시간은 오직

다른 무엇과의 상호관계속에서만 존재하며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의 시작과 끝 역시 환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깨닫지 못한
인간들의 이원론일 뿐이다. 실재계에는 무시간성과 끝없는 현재만이

영원히 이어지며 과거와 미래가 없다. 과거와 미래는 윤회적으로 상상된
또 하나의 이원론일 뿐이다. 무시의 무시간성으로 부터 공성에 완전히
병합되어 있는 윤회계의 모든 것들은이 요가가 보여주듯이 본질적으로

거기서 그들의 참다운 존재 상태로부터 시공을 초월한 완전한 정적으로
부터 분리될 수 없다.  브라만이 꿈없는 잠속에 고요히 머물 때 거기에는
우주도 다양성도 마음도 의식도 없었고 오직 한마음만 있었다. 시간과

공간은 거미집이 거미 입속으로 사라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브라만이
꿈을 꾸기 시작하자 모든것이 꿈속에서 나타났다.  무활동의 브라만에게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간성만 있었다. 그러나 꿈꾸는 브라만 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고 시간과 공간이 있다. 정적의 저 참다운
상태에서는 마음(MIND)하나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하나 상태를 벗어나
여럿으로 보이게 될 때면 수면 몽환 각성 출생 일상 사망 사후의 상태

라고 불리는 윤회계의 여러가지 의식상태가 생겨난다.


  티벳 해탈의 서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