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름을 기억하고 위대한 모범을 계승하는 것은 영웅의 유산이다.
- 벤자민 디즈레일리(영국 정치가,문인:1804~1881)
* 타락자는 우선 자기 인격의 토대를 부수고 선과 덕을 버리며 마지막에는 완전한 파멸의 길인 불신앙의 길을 더듬는다. - 폰투스 티아르(프랑스 시인:1511~1605)
*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창고가 비고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이 어리석다.
- 백거이(중국 당나라 시인:772~846)
*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다.
◇ Share everything.
◇ Play fair.
◇ Don't hit people.
◇ Put things back where you found them.
◇ Clean up your own mess.
◇ Don't take things that aren't yours.
◇ Say you're sorry when you hurt somebody.
◇ Wash your hands before you eat.
◇ Flush.
◇ Warm cookies and cold milk are good for you.
◇ Take a nap every afternoon.
◇ 뭐든 같이 써라.
◇ 페어플레이 해라.
◇ 사람을 때리지 말아라.
◇ 물건은 제자리에 갔다 놔라.
◇ 네가 어질러 놓은 것은 네가 치워라.
◇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아라.
◇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사과해라.
◇ 밥 먹기 전에 손 씻어라.
◇ (화장실에서) 물 내려라.
◇ 따뜻한 쿠키와 찬 우유는 몸에 좋다(=많이 먹어라).
◇ 오후엔 매일 낮잠을 자라.
-Robert Fulghum-
"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 中에서,
* 엄한 스승과 친구는 성공의 지렛대이다.
; 內無賢父兄(내무현부형) 外無嚴師友(외무엄사우) 而能有成者(이능유성자)
鮮矣(선의) 明心寶鑑(명심보감) 訓子篇(훈자편)에 나오는 구절로 안으로 어
진 아버지와 형이 없고,밖으로 엄한 스승과 친구가 없이 성공한 사람은 참
으로 드물다는 뜻이다. 스스로 불태워 제자를 啓發(계발)하고 자신의 모든
인격과 지식을 걸 수 있는 스승과,서로 선을 추구하고 격려하며 동시에 선의
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친구는 또 한사람의 성공을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스승과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중국 북송학자
司馬光(사마광)은 『經書(경서)를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쉬우나 사람을
인도하는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라고 한탄했다.
* 그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죽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나이들은 갑옷 속에 깊숙이
그 죽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 속에서 죽음은 포로와 같이 보였다. 부인들은
늙어갈수록 몸집이 작아져 갔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침대 위에서 마치 연극 무대
위에 누운 것처럼 온 가족과 하인들, 그리고 개들까지 모이게 한 뒤에 얌전하고
주인답게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어린아이까지도, 아주 갓난애까지도 아무렇게나 흔한 '어린애 죽음'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여태까지
자라온 자기와 지금부터 자라게 될 자기를 한데 합친 듯한 죽음을 했던 것이다.
- R.M.릴케 <말테의 수기>
* 아이를 잉태하고 있는 부인들의 모습에는 얼마나 우울하고도 아름다운 그림자가 서려 있는가. 단지 연약한 손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얹고 있는 그녀의 몸속에는,
어린애와 죽음이란 두 개의 열매가 맺혀 있는 것이다. 그 여자의 깨끗한 얼굴에 진하고 거의 푸짐하다고 할 수 있는 미소가 어리는 것은, 이 두 가지 열매가 한꺼번에
자라나기를 원하는 심정이 가끔 일어나기 때문은 아닌가 모르겠다.
- R.M.릴케 <말테의 수기>
* 조그만 달이 가진 온갖 능력에 나는 새삼 놀랐다. 달밤엔 주위의 모든 것이 투명하고 가볍게 공중을 떠 있는 듯이 보이며, 그 맑은 공기 속에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먼빛으로 보이고 사라져서 보
일 뿐, 가까이 느낄 수가 없다. 강이나 다리들과, 길게 뻗어나간
길이나 넓은 광장들은 부옇게 서로 얽혀서 거리에 대한 이상한 관계를 빚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상한 거리감을 지니게 되어 마치 비단폭에다 그린 풍경화
같이 보였다. 이런 날에는 퐁네프의 다리 위를 지나가는 초록빛 불빛의 마차나, 흔들거리는 무
슨 불인지 모를 붉은 빛, 혹은 회색 진주와 같은 빛깔의 짚더미를
둘러싸고 있는 방화벽에 붙은 한 장의 광고까지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풍경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물건이 단순화되어 버리고, 마네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얼굴과 같이 어렴풋하나, 올바르고 밝고 간단하게 처리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더하거나 덜한 황색 아니면, 손때 묻은 황색 무리들의 자주빛 어린 갈색,
커다란 화첩의 초록빛, 이런 것이 서로 조화되고 어울려서 서로 관련을 맺고 하나도 빠진 것이 없는 완전한 맛을 빚어내고 있었다.
- R.M.릴케 <말테의 수기>
* 시(詩)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려야만 될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가능하면 아주 오래 오래 살아서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들여야 할 것이고, 그래서 최후에 가서는 아마 십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시피 감정이 아닌 것이다(감정이라면 젊었을 때에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시는 경험인 것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많은 도회지, 온갖 인간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아야만 할 것이며, 여러 가지 동물도 배워야 하고, 새들이
나는 법을 느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조그만 꽃들이 아침이면 어떤 몸짓을 하면서 피어나는가를 알아야만 될 것이다. 미지의 고장의 길들, 뜻하지
않았던 해후(邂逅),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이별, 이런 것을 추억으로 되살려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아직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기쁨을 갖다 주는데 이해를 못하는 탓으로 슬프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부모에 대한 추억(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여러 가지
심각하고도 중대한 변화를 가지고 이상스럽게 생겨나는 어떤 시절의 병들, 조용하고 괴괴한 방에서 지낸 어떤 날, 바닷가의 아침, 바다 그 자체의 모습, 이곳
저곳의 여러 바다들, 별들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벅찼던 나그네로서의 밤들, 이런 것들을 시인은 추억으로 되살려낼 줄 알아야만 할 것이다. - 아니, 그런 모든
것을 생각해 되살리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루 하루가 같지 않고 다른 맛이 나는 사랑의 밤들을, 그리고 임산부의 부르짖는 소리, 가볍고 흰옷에 감겨
잠자며, 산후에 조리를 하는 여인들, 시인은 이런 모든 것을 추억으로써 지니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의 임종도 당해 봐야 할 것이며,
열어젖힌 창이 바람에 달가당거리는 방에서 죽은 사람을 위한 밤샘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억들을 갖는 것만으로도 역시 불충분하다. 추억이
많아지면 그것을 잊을 수 있어야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는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하다. 추억만 가지고는 아직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몸짓이 되며, 이름도 없는 것이 되어 그 이상 우리들 자신과도 구별할 수 없이 됨으로써 비로소 아주 우연한 순간에
한 편의 시의 최초의 말은 그런 추억의 한가운데서, 추억의 그늘로부터 발생해 나오게 되는 것이다. - R.M.릴케 <말테의 수기>
* 진실한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무언(無言)의 정적일 것이다.
- R.M.릴케 <말테의 수기>
* 아무데나 들어맞는 곁쇠처럼, 결혼이란 자물쇠 구멍이면 어디나 들어맞는 귀염받는 한량(閑良) - R.M.릴케 <말테의 수기>
* '과연'하고 나는 생각해 본다. 어느 누구도 진실한 것, 중요한 것을 아직 보지를 못했고, 인식을 못했으며 표현을 못했을까? 인간은 이미 수천년이란 세월을
두고 관찰하고 반성하고 표현해 왔는데 - 그 수천년이란 세월이 버터빵과 사과 한 개로 때우는 소학생의 점심 시간처럼 헛되게 사라져버릴 수가 있을 것인가?
그렇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발명과 진보, 문화와 종교와 그리고 철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제까지나 인생의 표면에서만 겉돌며 살아가게 마련인가? 더구나 뭐니뭐니 해도 무슨
가치건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표면적인 면마저 믿을 수 없을이만큼 지리한 천으로 둘러 씌워 가지고, 마치 하기 휴가를 만난 살롱의 가구처럼 보이게 하여도 좋단
말인가?
그렇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 세계사가 잘못 이해되어도 괜찮다는 것일까? 과거에 있어서는 그 시대의 우매한 민중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으니, 그 과거는 오류이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서 있는 한 인간에 대해서 말을 해야 될 텐데, 그 사람이 미지의 사람이요, 이미 죽었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어중이떠중이 인간들의 잡다한 모습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해도 상관이 없을까?
그렇다, 그런 미련한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모조리 체험으로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가? 인간이란 여태까지의 모든 조상들 덕분으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 자기와는 딴 것을 알고 있는 곁 사람들의 말에 미혹되어선 안될 것이라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설명을 해야만 되는 것인가?
그렇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인간들이 한번도 존재해 본 일이 없는 과거를 아주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수가 있을까? 오히려 모든 현실은 그들에겐 무의미한 것이요,
그들의 현실 생활은 전혀 연결을 맺은 것이 하나도 없이, 마치 빈방에 걸린 시계처럼, 다만 흘러가 버릴 수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 그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현재 살고 있는 소녀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여자들'이라고 말을 하며, 그리고 '아이들','소년들'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이런 말들이 이미 복수의 뜻을 지니고 있지 않고, 다만 헤아릴 수 없는 단수의 집합체라는 것을 눈치도 못챘다(아무리 교양을 쌓고도 눈치를 못챘다)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신을 무슨 공유물(共有物)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
가령 여기 국민학교 아동 둘이 있다고 하자. 한 아이가 주머니칼을 샀는데, 같은 날 다른 아이도 똑같은 칼을 샀다고 치고, 그 뒤 한 주일 후에 두 아이는
서로 그 칼을 내 보인다면, 그 두 자루의 칼은 그저 어딘지 좀 비슷한 데가 있을 뿐, 아주 딴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 그 칼들은 그다지도
그 두 아이의 다른 손에서 딴 것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허긴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말을 시킬라치면 우리 집 애 손에는 견디어 나는 물건이 없다고 하겠지만)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그대로 부리지 않고 내버려 두어도 좋다고 믿어도 좋을 것인가?
그렇다,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만일 이런 모든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또한 다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의 징조만 보이더라도 -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무엇이든 조처를 강구해야만 될 것이다.
이러한 불안스러운 생각을 가진 인간은 누구나 무엇이든 게을리했던 일부터 손을 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가령 자기가 전혀 적합한 인간은 아닐지라도,
다만 인간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무엇이든 게을리했던 일부터 손을 대야만 할 것이다. 결국 자기 이외에 딴 사람이라고는 없는 법이니까.
- R.M.릴케 <말테의 수기>
* 글을 쓴다고 하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의 종결이 될 것이다. - R.M.릴케 <말테의 수기>
*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공부는 할 수 있다. 공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경우는 없다. 인간은 몇 살이 되어도 학습에 의해서 진보하는 동물이다.
톨스토이는 노년이 되고 나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괴테는 죽기 직전까지 <파우스트>를 썼
다. 작곡가 포레의 작품에서는 70대에 작곡된 것에서도
진보를 엿볼 수 있다. 피카소는 91세가 되었을 때에도 침대 옆에서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21세기는 고령화 사회이다. 이것은 마이너스 이미지로 포착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퇴직 후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멋진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퇴직한 사람들이 50년 전이라면 결코 사회나 가정에서 이룰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낼 수가 있다. 슐리만이나 로웰은 사업에
성공한 후 학문 연구를 시작했다. 앞으로는 보통 사람도 그들과 똑같이 할 수 있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앞으로는 '투자'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소비'로서의 공부가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궁극의 '공부'일 것이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예측하기 어려운 우주에 살고 있지만,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생리적,지능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생물보다 우위에 있다. 인류는 그 생리학적 구조에 의해서 가능한, 타고난 적응 능력과 학습 능력을 이용하는 데에서만 강한 법이다.
- 노버트 위너(인공두뇌학(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인간기계론>
* 많은 사람들이 '공부는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참으면서 한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러나 공부는 원래 즐거운 법이다.
누구나 호기심이 만족되었을 때 즐거움을 느끼고 이해가 깊어지면서 기쁨을 느낀다. 또한 그때까지 각각 다른 것으로 포착하던 것을 체계적인 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이것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그래서 공부란 원래 즐거운 법이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공부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또 한 가지 방법은 지식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중략)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그것에 더욱 흥미를 갖게 마련이다. 즉, 지식이 증가하면 흥미도 증가한다.
그리고 보다 깊이 알고 싶어 진다.
(중략) 이렇게 흥미와 지식은 연쇄적으로 증가한다. 공부를 할 때 이렇게 연쇄를 넓혀 가는 것
이 중요하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지식을 늘려서 흥미를 깊게 하라. 그러면 지식은 더욱 늘어난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1. 기초는 따분하고 어렵다. 따분한 기초를 공부하는 것은 제1원칙에 위반된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으면 건너뛰고 흥미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2. 수학에서는 당면한 문제를 처리한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간다.
3. 단어장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4. 논문을 읽을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신경 쓰지 말고 통독한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초학습법 3대 기본원칙
제1원칙 - 공부 방법과 교재를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어간다.
제2원칙 - 전체부터 이해한다.
제3원칙 - 80% 이해하면 다음으로 넘어가라.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부분을 쌓아 올려서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파악하고 나서 부분을 이해하라.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새의 눈'법 - 전체를 우선 파악하고 나서 그것에 근거하여 부분을 이해하는 것. 즉, 새가 상공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
조감도(鳥瞰圖).
* 교과서나 참고서의 목차를 활용한다.
*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crucial(결정적인,대단히 중요한)'과 'trivial(사소한)'을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 것이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학습 내용은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정확하게 구별해 내서 중요한 내용에 힘을 쏟는
것이 공부하는 비결이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학습 능력이란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crucial(결정적인,대단히 중요한)'과 'trivial(사소한)'을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 것이다. (중략)
나카야마 오사무는 그의 저서 <부모와 함께 향상시키는 학습 전략>에서 이것을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1) 머리가 좋은 아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줄기를 능숙하게 파악하며(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요점이 무엇인지 몰라
서 방대한 정보 속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2) 줄기와 가지를
구분하는 능력은 타고난 소질이 아니라 교사나 교재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중요한 점을 파악하고, 그것에 힘을 집중하라.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니와 다케오는 학습 패턴에 '이해형'(또는 예정조화형)과 '납득형'이 있다고 한다. 전자의 방법을 취하는 학생은 학습 도중에 의문이 생겨도 옆으로 제쳐두고,
우선은 해답을 끌어내는 방법만을 기억해 둔다. 이에 비해서 후자의 방법을 취하는 학생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다음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지금까지의 교육에서는 이해형을 육성해 왔다. (2) 독창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이해형에서 납득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도쿄공업대학 교수인 곤노 히로시도 "독창적인 일을 위해서는 납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지금까지의
교육에서는 이해형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2) 독창적인 지적 작업을 위해서도 이해형이 필요하다. 이 대립은 교육론의 본질에 관계되는 것이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기초를 80% 이해하면 응용으로 넘어간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내가 말하는 것은 "80%에서 그만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되돌아와서 100%를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어쨌든 앞으로"라고 한 것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자연히 20%를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초를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기초에 언제까지나 구애되지 말라. 앞으로 나아가라.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목표가 의욕을 낳는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공부할 경우, 그 의욕은 대단히 강해진다. 왜냐하면, 공부란 목표와 현재의 상태와의 차이를 메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일반적으로 역경에 처한 사람일수록 진지하게 공부한다.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공부는 의무이다. 부모가 강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욕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는다.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공부에는 노하우와 함께 의욕이 필요하다. 목표가 있으면 의욕이 솟는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목표는 구체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이미지를 동반한 목표는 대단히 구체적이 된다.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 목표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포착하라. - 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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