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는 죽음의 궁극적인 거처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몸이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의 육체가 쇠락해 질 것이고 썩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육체가 영속적이지 않다는 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그리하여 죽음으로
부터 도피하려는 사람은 내일 소위 불사의
내일을 약속해 줄 어떤 것 만을 찿게 된다.
이때 몸은 당연히 고려대상에서 무시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신이 영속적이고 정적이고
불멸하고 동요됨이 없고 지속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비밀스러운 욕망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그런 속성들은 상징(symbols)개념
(concepts) 관념(ideas)에만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데 실재하는 모든 나무가
변화하고 성장하고 형태를 바꾸고 죽을 지라도
나무라는 단어 자체는 그대로 지속된다.
이런 정적인 불멸성을 추구하면서 그는 하나의
관념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자아(ego)라고 불리는
지적인 추상물이다. 사람은 자신의 신체와
함께 살지 않으려고 한다. 신체는 부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자신에
대한 하나의 그림 죽음에 대한 참된 관계도
무시된 하나의 그림인 자아로써만 살게 된다.
캔 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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