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

별관신사 2012. 11. 27. 19:40

테세우스는 파란만장한 삶을 영위하는 동안 수많은 연애 사건을 겪긴 했
지만, 한번도 결혼은 하지 않았다. 아테네로 돌아온 직후 다시금 평범한 시
민으로서의 삶을 되찾은 그는 이제는 자신도 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가 만난 온갖 여자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
긴 여자는 크레타의 왕인 미노스의 딸 파이드라였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미노타우로스를 대면하기 위해 크레타에 갔을 때였다. 당시에 파

이드라는 테세우스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알았고, 반면 그녀의 자매인
아리아드네가 그의 품에 안겨버린 사실을 독자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을 것
이다. 얼마 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낙소스 섬에 떨구어버렸고 이후로

는 그녀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하지만 파이드라는 잊지 않고 있었다. 오히
려 그녀에 대한 추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상화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그는 대번에 그녀를 떠 올렸다. 그녀가 여전

히 독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허락을 얻기 위해
크레타를 찾아갔다. 수많은 공적들의 후광 덕택에 미노스의 동의를 얻어내
는 일은 어려울 게 없었다. 파이드라에게는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 테세우

스의 민주주의적 신념도 여자들이 자신의 남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사
실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테세우스에게 좀체로 매력을 느낄
수 없던 파이드라는 아무런 열정도 없이 그와 결혼하여 아테네에 정착했

다. 몇 달이 지나, 둘이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때, 테세우스는 아주 곤란
해하며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며 말을 꺼냈다.
"몇 년 전에 헤라클레스와 함께 일을 수행하던 중에 아마존족의 여왕 안

티오페와 짧은 관계를 가졌다오. 그녀를 떠나면서 혹시 아들을 낳게 되면
그의 나이가 열여덟이 될 때 내게 보내라고 약속했소. 한데 안티오페가 히
폴리토스라는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애가 이제 열여덟 살이 되어 지금 아테

네로 오고 있는 중이고 며칠 안에 도착할 거라는 소식을 방금 전해 들었다
오. 바라건대, 그 아이를 너무 섭섭지 않게 대해 줬으면 하오." 테세우스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이드라는 질투심 또한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히폴리토스를 잘 대해주겠노라고 선선히 약속했다. 그녀는 자신이 말을 잘
한 건지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히폴리토스는 젊고 미남이고 활동적이
며, 완벽하고 강직한 도덕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한데 그는 건강에 대한 강

박관념이 있었다. 단단한 육체를 유지하고 생체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근심
에 사로잡혀,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낮에는 사냥을 하고 술은 마시지 않
았으며 채식과 장수식을 철저히 지켰고 하루에 세번 손과 이를 닦았으며

매일 저녁 아흡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여자들은 그에게 뿌리 깊은 혐오감
을 불러일으킬 뿐이었고, 피곤과 분쟁의 원천으로만 여겨졌다. 그의 완벽
한 정숙함과 자연에 대한 사랑은 사냥과 숲의 고독한 여신 아르테미스의

총애를 받게 했다. 반면에 아프로디테는 그가 사랑의 즐거움을 경멸한다
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그에게 벌을
내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폴리토스가 자기 아버지를 만나러 떠나던

그날 아프로디테는 마침내 그 기회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테세우스는 아
들을 보자마자 강한 호감을 느꼈다. 한편 파이드라는 자신의 의붓아들을
보는 순간 호감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미친 듯한 사랑

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벌받을 사랑의 감정에 변명의 여지가 있다면 그
녀가 여지껏 한번도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히폴리
토스는 매우 잘생겼고. 아프로디테가 파이드라의 가슴에 이러한 급작스럽

고도 격렬한 정열의 불을 당겨버린 것이다. 몇 달이 지나갔고, 그 동안 테
세우스와 히폴리토스 부자간의 애정은 파이드라가 의붓아들에 대해 품고
있는 사랑처럼 나날이 커가기만 했다. 하지만 파이드라가 워낙 자신의 감

정을 잘 감추었기 때문에 테세우스와 히폴리토스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
았다. 어느 날 테세우스는 왜 긴 여행길에 올랐다. 테세우스가 없는 때를
이용하여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와 단 둘이 있게 된 어느 날 저녁 마침내

자신의 열정에 굴복하여 사랑을 고백하고 말았다. 히폴리토스는 아연실색
했다. 여전히 모든 여자들을 혐오하긴 했지만 양모인 파이드라만은 그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갑자기 그녀 곁을 떠나 방을 나가버렸다. 숙명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 하인
하나가 들어와 테세우스의 급작스러운 귀환을 파이드라에게 알렸다. 두려
움과 수치심과 불같은 복수심에 사로잡힌 파이드라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

다.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유혹하여 강간하려 했으며
이러한 굴욕을 견디지 못해 죽어버리기로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편에게
썼다. 편지를 다 쓰고 난 후 그녀는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자살했다. 얼마 후

도착한 테세우스는 아내의 시체와 편지를 발견했다. 그는 히폴리토스를 불
러 심하게 질책했다 당혹한 히폴리토스는 진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만일 아
버지가 진짜 죄인이 파이드라라는 사실을 알면 더 더욱 분노할 거라는 생

각이 들었다. 남달리 고귀한 영혼을 지닌 히폴리토스였기에 변명을 포기한
채 그대로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기로 했다. 히폴리토스를 향한 아프로디
테의 원한이 해소되었으니 일이 그쯤에 서 끝났으리라 생각할는지도 모른

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따름이었다 이후에 계속되는 파장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올림포스의 또 다른 신인 포세이돈은 침대를
가지고 여행객들을 괴롭혔던 자기 아들 프로크루스테스가 몇 년 전에 테세

우스에 의해 죽었던 사실로 그 역시 테세우스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쫓겨난 히폴리토스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2필의
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아테네 근처의 해변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포세

이돈이 보낸 바다 괴물이 갑자기 바다에서 솟구쳐 나왔다. 놀란 말들이 미
친 듯 날뛰었고 마차는 뒤집어졌다 히폴리토스는 마차에 매달린 채 한참을
끌려다녔다. 피로 뒤범벅이 된 히폴리토스는 근처에 있던 농부들의 구원으

로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옮겨졌다. 숨을 거두기 전 그는 테세우스에게 몇
마디의 말을 할 수 있었다.
"저는 결코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려 하지 않았어요. 제가 그랬듯 아버

지도 죄지은 그 여자를 용서하세요."
그리차여 테세우스는 모든 걸 깨달았다. 후회와 슬픔에 사로잡힌 그는 아
테네를 떠나 이웃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친구 리코메데스의 집으로 피신했
다. 처음에 리코메데스는 친구를 잘 대접했다. 그런데 며칠 후 둘이 같이

벼랑 근처를 산책하던 중 리코메데스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테세우스를 갑
자기 벼랑 아래로 밀어버렸고 바위에 깔린 테세우스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리코메데스의 행위는 흔히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즉,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적용하고 있던 민주적이고 전복적인 이념들이 그리스 전역에 퍼
지는 걸 리코메데스가 두렵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는 얼마간
의 진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리코메데스의 행동에는 좀더 심오한 다른

원인이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밝히기로 하겠다.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와 테세우스가 죽었으니 이 피로 물든 비극의 커튼을 이제 내려
야 하는가? 아니,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올림포스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아직 자신의 마지막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르테미
스는 히폴리토스를 특히나 좋아했기 때문에 그의 때 이른 죽음에 몹시 상
심하고 있었다. 그녀는 의술의 신인 자기 오빠 아폴론을 찾아가 히폴리토

스에게 생명을 다시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동생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
지만 아폴론 자신은 이 일에 개인적으로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리스 최고의 의사이자 세계 제일의 의사인 자기 아들 아크클레피오스에게

히폴리토스를 되살리는 일을 맡겼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일에 동의하여
성공했다. 그런데 이 일을 수행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멸망을 재촉한 셈이
되었다. 제우스의 두 형제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히폴리토스의 소생을 너그

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포세이돈은 그 자신이 히폴리토스를 죽게
한 장본인이니 그러한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하데스는 이후로 아스클
레피오스가 이런 식의 일에 자꾸 끼여들면 자신의 저승 왕국에 점차 사람

이 줄어들어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형제는 제우스를 찾아
가 아스클레피오스를 본보기로 응징해줄 것을 간곡히 청원했다. 제우스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여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벼락을 내렸다 그러자 이번에

는 아폴론이 자기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고 말았다. 하지만 감히 제우스나
포세이돈 또는 하데스를 직접 상대할 수는 없었기에 제우스의 벼락을 제조
하는 헤파이스토스의 일꾼들인 키클롭스에게 화살을 쏘아버렸다. 공교롭게

도 아폴론이 쏜 화살을 만든 것도 바로 그 키클롭스들 이었다. 이러한 보
복의 결과로 이번에는 헤파이스토스가 활을 겨누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올림포스에서 이같은 보복전이 계속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제우스

는 자신이 직접 아폴론에게 벌을 내리기로 했다. 그래서 아폴론에게서 온
갖 신의 특권을 빼앗고는 올림포스에서 추방시켜버렸다. 이러한 아폴론의
추방은 훗날 트로이 전쟁의 기원이 됨을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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