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관심이나 실천적 관심이냐 아니면 무관심이냐에 따라서
진선미의 세계가 서로 다르게 드러난다. 이제 우리는 세가지 안경을
얻게 된 셈이다. 참과 거짓을 보는 안경 선과 악을 보는 안경 아름다움과
추함을 보는 안경 칸트의 유명한 세가지 비판서가 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번째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칸트는 이론적 관심으로 드러나는
진리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두번째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칸트는 무관심을
통해서 드러나는 윤리의 세계를 해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판단력비판 을 통해 칸트는 무관심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생각해 볼점은 위와같이 세가지
관심으로 동일한 대상이나 사건을 모두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
으로 볼 때 아무나 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온 타고난 천재적인
인물이라면 저절로 그럴 수 있을 런지 모르지만칸트가 구별했던 진선미의
세계를 우리가 별도로 식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교육과 학습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바로 그런 특별한 교육과 경험을 대가로 해서만얻을 수 있는
분별력이 우리에게 갖ㅈ추어져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다양한 관심에 따라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분별력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
을 수 없다. 우수한 교육 및 학습에 장기간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부르조아 계층이 아니라면 이런 과정을 학습할 수있겠는가. 걀국 칸트에
따르면 분별력이 있는 사람 혹은 배운 사람이라는 것은 동일한 대상이나
사건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론적 관심으로도 그리고 무관심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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