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

크리슈나의 삶을 보라.

별관신사 2020. 9. 6. 10:26

장자가 그에 대하여 알았더라면 매우

아르다웠을 것이다.  크리슈나의 삶은

장난이다.

 

붓다 마하비라 예수는 어쩼던 약간은

진지해 보인다. 마치 무엇인가가 성취

되어야 했던 것처럼 모크샤나 니르바나

 

무욕의 경지 등 ... 그러나 크리슈나에게는

절대 목적이 없다.  그는 피리부는 사람

이였다.  재미로 살며 소녀들과 춤을 추며

 

즐기고 노래부른다.  그에게는 이르러야

할 곳이 없다. 모든것이 이곳에 있다.

그러니 왜 결과에 대해 고민하겠는가?

 

모든것이 지금 유용하다. 왜 그것을 즐기지

않겠는가? 재미가 완전한 이의 표시라면

크리슈나는 완전한 사람이다.

 

인도에서는 크리슈나의 삶을 카리트라

(chartra)그의 인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크리류나의 릴라(leela)

 

그의 놀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격이

아니다. 그것에는 목적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목적이다.

 

그것은 곧 어린아이와 같다.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것의 이미는 무엇인가?

그대는 이렇게 물을 수 없다.

 

그는 그 자신을 즐기고 있으며 나비를 쫒아

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무엇을 성취

하겠는가? 다만 햋빛속에 뛰놀고 있을 뿐

 

이 놀이가 그를 어디로 이끌겠는가?

어느곳으로도 아니다. 그는 어디로도

가고있지 않다. 우리는 그를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하며 우리 자신을 성숙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그대가 진실로 성숙해지면

 

그대는 다시금 어린아이와 같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대의 삶은 다시 장난이 된다.

그대는 그것을 즐길 것이다.

 

그것의 모든 조각들을 그대는 진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깊고 깊은 웃음이 그대의

삶을 모두 퍼져 갈 것이다.

 

그것은 일이 아니라 춤처럼 될 것이다.

그것은 노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수학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즐김이 될 것이다.

 

                         오쇼의 장자강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