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는 비교될 대상이 없을만큼 독특하다.
그는 까마득한 과거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속하는 인물이다.
이것이 그의 주된 독특함이다. 진실로 그는
미래의 인물이다. 인류는 아직 크리슈나와 동
시대인이 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크리슈나은 의식의 절대적인 경지에 올랐으면
서도 심각하거나 침울하지 않았다. 보편적으로
종교인들의 주된 특성은 우울과 심각함이다.
그들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패한 사람처럼 슬퍼
보인다. 이 삶에서 도망치려는 사람들 같다.
성자들의 긴 역사에서 크리슈나는 춤추고 노래하고
웃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과거의 종교는 철저하게
삶을 부정하는 자학적 성격을 띠었다. 그들은
슬픔과 고통이 커다란 미덕이라도 되는 것 처럼
가르쳤다. 웃음의 종교 삶의 모든것을 받아 들이는
종교는 아직도 태어나지 않았다. 기존의 종교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좋은 일이다.
차라리 기존의 종교와 아울러 낡아 버린 신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관념 또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지금까지 모든 종교는 삶을 둘로
나누어 생각했다. 그리고 삶의 부분을 받아 들이는
한편 다른 부분은 부정했다. 크리슈나 만이 삶
전체를 받아 들이면서 삶에 대한 전체적인
수용성은 크리슈나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오쇼의 내사랑 인디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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