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이 되기 전부터 그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모두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고 있었다. [참회록]에서 그는
그러한 실마리를 어떤 모양으로 느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어쩐지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의혹의 순간을
가끔 느꼈다. 이젠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알 수 없다. 그럴 때 나는
자신에게 물어 본다.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이냐고.」
처음에 그는 그런 의문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허무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와 같은 순간이 빈번히 일어나게 되자
그는 이전보다 더욱 집요하게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다.
「나의 발 밑에는 이미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나의
인생을 이루고 있던 것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삶의 수단이 되는 것은 없다. .....나는 행복하며 건강한
인간이면서도 더 살아갈 수 없는 심정이들 정도다. 외견상으로는 수척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실에 있는 두 개의 장에 걸쳐 있는 철봉에
매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망(網)을 숨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냥도 그만 두었다.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목숨을 끝맺을 기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
톨스토이는 조금씩 생명의 힘은 신앙 속에 있다는 사실, 인간의 가장
깊은 지혜는 신앙에 의해 얻어지는 해답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 나라의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희랍 정교(政敎)의 교리였다. 서적뿐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소박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진정한 기독교에도 많은
미신이 섞여 있는 것을 알았으나 그래도 그들에게는 그 신앙이 필요한
것이며 인생의 존재 이유를 거기에서 얻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박한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로서는 인생이 살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서야 인생은 그 자체가 허무한 것이 아니며 악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고 타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는 복음서에 있는 인간은 빛보다도 어둠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함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던 모든 것에 이끌려 그는 그의 사생활을 새로이
자세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고뇌 속에 일관된 회의와
탐구시대의 개막이었다. 해결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의문의 해답을
과학에서, 철학에서, 그리고 종교에서 찾아내려고 했다. 그래서 끝내는
장년기, 즉, 한사람의 인간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행복의 모든 것을 얻는,
원숙기에 그는 그 행복에서 등을 돌린 것이다.
토지라는 재산도 기타 인생의 모든 매력도 그에게는 발을 얽어매는
쇠사슬과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등에 젊어진 무거운 십자가처럼
생각되었다. 때로는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여 그것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과거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싶었다. 젊었을 때부터 꿈꾸고 있었던
행복한 가정생활이었는데도, 그것마저 버리고 싶다고 스스로
요구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기가 쌓아올린 부(富)를
버리고, 교회만이 자기가 자비를 베푼 민중과의 인연을 보증하는
방법이었느데도, 깊은 유대를 느끼고 있던 교회와 결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를 버리기 전, 그는 그것을 철저히 분석하고 정교회의 육식
금지하는 것과 단식도 철저히 지켰으며 모든 기도를 외우며 근무에는
빠짐없이 참가했다. 동시에 그는 성서의 연구도 하고 있었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정교회의 어떤 점에 실망을 느끼고 있는 가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리스도의 순수한 가르침이 톨스토이의 눈에는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의 광선을 역행함으로써 나는 태양에 도달했다.」라고 정교회를
경유해서만이 기독교를 인식했던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신앙]에서는「나는 진리의 발현(發現)에 눈이 어두웠다. 내 인생의
의의란 무엇이냐. 다른 사람의 인생의 의의란 무엇이냐. 나는 이 의문에
완전히 답을 할 수 있게 되였다.」
이때 그는 대규모 사업에 전심전력하고 있었다. 신약의 4 복음서를
새로 번역하여 비교 검토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기
위해 교정을 보고 있었으며 교의(敎義) 비판의 작업도 계속했다. 그 결과
그는 만년에 히브리어와 희랍어를 습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고 있었다. [참회록]에서 그는
그러한 실마리를 어떤 모양으로 느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어쩐지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의혹의 순간을
가끔 느꼈다. 이젠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알 수 없다. 그럴 때 나는
자신에게 물어 본다.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이냐고.」
처음에 그는 그런 의문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허무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와 같은 순간이 빈번히 일어나게 되자
그는 이전보다 더욱 집요하게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다.
「나의 발 밑에는 이미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나의
인생을 이루고 있던 것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삶의 수단이 되는 것은 없다. .....나는 행복하며 건강한
인간이면서도 더 살아갈 수 없는 심정이들 정도다. 외견상으로는 수척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실에 있는 두 개의 장에 걸쳐 있는 철봉에
매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망(網)을 숨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냥도 그만 두었다.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목숨을 끝맺을 기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
톨스토이는 조금씩 생명의 힘은 신앙 속에 있다는 사실, 인간의 가장
깊은 지혜는 신앙에 의해 얻어지는 해답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 나라의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희랍 정교(政敎)의 교리였다. 서적뿐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소박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진정한 기독교에도 많은
미신이 섞여 있는 것을 알았으나 그래도 그들에게는 그 신앙이 필요한
것이며 인생의 존재 이유를 거기에서 얻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박한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로서는 인생이 살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서야 인생은 그 자체가 허무한 것이 아니며 악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고 타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는 복음서에 있는 인간은 빛보다도 어둠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함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던 모든 것에 이끌려 그는 그의 사생활을 새로이
자세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고뇌 속에 일관된 회의와
탐구시대의 개막이었다. 해결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의문의 해답을
과학에서, 철학에서, 그리고 종교에서 찾아내려고 했다. 그래서 끝내는
장년기, 즉, 한사람의 인간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행복의 모든 것을 얻는,
원숙기에 그는 그 행복에서 등을 돌린 것이다.
토지라는 재산도 기타 인생의 모든 매력도 그에게는 발을 얽어매는
쇠사슬과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등에 젊어진 무거운 십자가처럼
생각되었다. 때로는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여 그것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과거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싶었다. 젊었을 때부터 꿈꾸고 있었던
행복한 가정생활이었는데도, 그것마저 버리고 싶다고 스스로
요구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기가 쌓아올린 부(富)를
버리고, 교회만이 자기가 자비를 베푼 민중과의 인연을 보증하는
방법이었느데도, 깊은 유대를 느끼고 있던 교회와 결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를 버리기 전, 그는 그것을 철저히 분석하고 정교회의 육식
금지하는 것과 단식도 철저히 지켰으며 모든 기도를 외우며 근무에는
빠짐없이 참가했다. 동시에 그는 성서의 연구도 하고 있었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정교회의 어떤 점에 실망을 느끼고 있는 가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리스도의 순수한 가르침이 톨스토이의 눈에는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의 광선을 역행함으로써 나는 태양에 도달했다.」라고 정교회를
경유해서만이 기독교를 인식했던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신앙]에서는「나는 진리의 발현(發現)에 눈이 어두웠다. 내 인생의
의의란 무엇이냐. 다른 사람의 인생의 의의란 무엇이냐. 나는 이 의문에
완전히 답을 할 수 있게 되였다.」
이때 그는 대규모 사업에 전심전력하고 있었다. 신약의 4 복음서를
새로 번역하여 비교 검토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기
위해 교정을 보고 있었으며 교의(敎義) 비판의 작업도 계속했다. 그 결과
그는 만년에 히브리어와 희랍어를 습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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