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메시첼코에 사는 개인비서였던 첼트코프의 집에 체재하는 동안
유언장을 썼다. 모든 저작의 판권은 예외없이 포기한다는 것과 법률에
따라 상속인을 지정하지 않으면 안되어 딸 알렉산드라를 모든 저작권의
법적 상속인으로 지정했다. 그는 이 유언에서 부기(附記)로 문서의
관리와 편찬을 첼트코프에게 위임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소냐
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냐는 어떤 암시의
실마리였는지 아니면 일종의 예감이 들었는지 이 유언장을 탐지해 냈다.
그날 이후 소냐는 밤낮할 것 없이 그 의혹에 대한 물적 증거를 찾아내려고
초조히 서둘렀다. 예전에는 아내에게 비밀이란 손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톨스토이도 이렇게 해서 발견되어서는 안될 비밀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원고와
매일 기록하고 있던 일기를 소냐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숨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편 소냐는 남편의 비밀의 열쇠, 즉 자기에게 숨길 정도의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려고 필사적이었다. 남편이 어떤 사람과 말을 하고
있으면 열심히 방문에 귀를 기울였고 남편이 없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원고 용지를 휘저어댔다.
톨스토이는 나 하나만을 위해서라고 정해 놓은 일기를 따로 쓰기
시작했다. 소형의 노트여서 숨기기도 쉬웠다. 대개 셔츠 속이나 장화
속에 숨기고는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또 한가지는 다른 일기가
씌이자마자 복사되는 것을 마침내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1910년 7월 29일의 일기에「사실 솔직하고 순수한 일기를 이젠 더 쓸 수
없다. 또 하나 다른 일기를 쓰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는 딸 타차아나의 집에서 지내다가 소냐의 48회 결혼기념일에
야스나야로 돌아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1910년 9월 23일 야스나야로 갔다.
그의 비밀 일기의 맨 마지막은 그날 밤의 기록으로 끝이었다.
「야스나야로 출발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공포로
휩싸인다. 주의할 것은 침묵을 지킬 일이다. 그리고 그녀 내부에도
하나의 혼(神)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끝으로 톨스토이의 최초 비밀 일기는 끝났다.
그는 야스나야에서 또 다시 이전과 다름없는 고뇌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항상 탐색을 계속해 온 소냐는 결국 작은 비밀 일기를 발견해
냈다. 소냐는 그것을 감추어 버렸다. 톨스토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줄
알고 9월 24일 수첩을 새로 마련했다.
날이 갈수록 톨스토이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되었다. 그는10월 25일
행방을 감추기 3일전 다음과 같이 썼다.
「여전히 괴로운 심정, 그녀의 사유, 스파이 행위, 죄많은 욕망,
그것들이 나에게 집을 나가는 이유를 주었다. 나는 이처럼 약해졌다
가축과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녀가 애처러워진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밤새도록 그녀와 참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눈을 떴다. 그리고 또 잠든다. 그러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2 주일이 지나 10월 27일에서 28일에 걸친 밤에 그는 예기하고
있던 충격을 실지로 받았고 그후 두 번 다시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8일 가을 밤 오전 3 시 그는 어둠 속에 섞여 야스나야
폴리야나를 떠났다. 자기가 한평생의 대부분을 몸담았던 집을 버린
것이다.
그는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때문에 심한 갈등을 겪었고 그의
가족의 비교적 사치스런 생활에 견디지 못하여 사회를 떠나 농부나
노동자들과 더불어 소박한 생활을 하고 싶어했었다. 항상 정념과
싸우면서 자신을 분석하고 유례없는 엄격함으로 자신을 심판하는,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엄격했다. 동시에 철저한 낙천가여서 결코
불평은 하지 않았다. 어떠한 어려움도 실마리를 찾아내며 어떠한 문제도
해답을 구하고 어떠한 불행이나 괴로움을 당해도 위로를 찾아냈다. 가령
그것이 치통이더라도 그는 그 대상을 발견해 냈다. 일기에 「치통으로
건강의 고마움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또는 「신체의 아픔이 틀림없이
정신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 아픔을 나에게 주신 신에게
감사해야겠다.」
톨스토이의 전 생애 지상목표는 보다 향상된다는 것이었다.
그후 그는 개인비서였던 첼트코프의 도움을 받아 방랑 생활을 하다가
친분이 있던 아스타보 역장 댁에서 페렴으로 1910년 11월 6일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있다. .....대단히 진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집을 나가 빈사상태를 헤매면서도 결코 그의 아내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헛소리로 더 도망치자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소냐는 그로부터 9년 후 11월 남편과 같은 폐렴으로 사망했다.
유언장을 썼다. 모든 저작의 판권은 예외없이 포기한다는 것과 법률에
따라 상속인을 지정하지 않으면 안되어 딸 알렉산드라를 모든 저작권의
법적 상속인으로 지정했다. 그는 이 유언에서 부기(附記)로 문서의
관리와 편찬을 첼트코프에게 위임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소냐
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냐는 어떤 암시의
실마리였는지 아니면 일종의 예감이 들었는지 이 유언장을 탐지해 냈다.
그날 이후 소냐는 밤낮할 것 없이 그 의혹에 대한 물적 증거를 찾아내려고
초조히 서둘렀다. 예전에는 아내에게 비밀이란 손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톨스토이도 이렇게 해서 발견되어서는 안될 비밀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원고와
매일 기록하고 있던 일기를 소냐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숨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편 소냐는 남편의 비밀의 열쇠, 즉 자기에게 숨길 정도의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려고 필사적이었다. 남편이 어떤 사람과 말을 하고
있으면 열심히 방문에 귀를 기울였고 남편이 없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원고 용지를 휘저어댔다.
톨스토이는 나 하나만을 위해서라고 정해 놓은 일기를 따로 쓰기
시작했다. 소형의 노트여서 숨기기도 쉬웠다. 대개 셔츠 속이나 장화
속에 숨기고는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또 한가지는 다른 일기가
씌이자마자 복사되는 것을 마침내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1910년 7월 29일의 일기에「사실 솔직하고 순수한 일기를 이젠 더 쓸 수
없다. 또 하나 다른 일기를 쓰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는 딸 타차아나의 집에서 지내다가 소냐의 48회 결혼기념일에
야스나야로 돌아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1910년 9월 23일 야스나야로 갔다.
그의 비밀 일기의 맨 마지막은 그날 밤의 기록으로 끝이었다.
「야스나야로 출발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공포로
휩싸인다. 주의할 것은 침묵을 지킬 일이다. 그리고 그녀 내부에도
하나의 혼(神)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끝으로 톨스토이의 최초 비밀 일기는 끝났다.
그는 야스나야에서 또 다시 이전과 다름없는 고뇌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항상 탐색을 계속해 온 소냐는 결국 작은 비밀 일기를 발견해
냈다. 소냐는 그것을 감추어 버렸다. 톨스토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줄
알고 9월 24일 수첩을 새로 마련했다.
날이 갈수록 톨스토이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되었다. 그는10월 25일
행방을 감추기 3일전 다음과 같이 썼다.
「여전히 괴로운 심정, 그녀의 사유, 스파이 행위, 죄많은 욕망,
그것들이 나에게 집을 나가는 이유를 주었다. 나는 이처럼 약해졌다
가축과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녀가 애처러워진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밤새도록 그녀와 참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눈을 떴다. 그리고 또 잠든다. 그러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2 주일이 지나 10월 27일에서 28일에 걸친 밤에 그는 예기하고
있던 충격을 실지로 받았고 그후 두 번 다시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8일 가을 밤 오전 3 시 그는 어둠 속에 섞여 야스나야
폴리야나를 떠났다. 자기가 한평생의 대부분을 몸담았던 집을 버린
것이다.
그는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때문에 심한 갈등을 겪었고 그의
가족의 비교적 사치스런 생활에 견디지 못하여 사회를 떠나 농부나
노동자들과 더불어 소박한 생활을 하고 싶어했었다. 항상 정념과
싸우면서 자신을 분석하고 유례없는 엄격함으로 자신을 심판하는,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엄격했다. 동시에 철저한 낙천가여서 결코
불평은 하지 않았다. 어떠한 어려움도 실마리를 찾아내며 어떠한 문제도
해답을 구하고 어떠한 불행이나 괴로움을 당해도 위로를 찾아냈다. 가령
그것이 치통이더라도 그는 그 대상을 발견해 냈다. 일기에 「치통으로
건강의 고마움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또는 「신체의 아픔이 틀림없이
정신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 아픔을 나에게 주신 신에게
감사해야겠다.」
톨스토이의 전 생애 지상목표는 보다 향상된다는 것이었다.
그후 그는 개인비서였던 첼트코프의 도움을 받아 방랑 생활을 하다가
친분이 있던 아스타보 역장 댁에서 페렴으로 1910년 11월 6일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있다. .....대단히 진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집을 나가 빈사상태를 헤매면서도 결코 그의 아내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헛소리로 더 도망치자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소냐는 그로부터 9년 후 11월 남편과 같은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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